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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건축구성 상세보기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건축구성

정민지 2024-02-23 09:30:04

▪︎ 출연: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아침칼럼’ (2024년 2월 23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문화재수리기술위원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의 최영식 교수입니다.   

불국사의 장대한 석단(石壇) 위에 지어진 목조 건축물들은 크게 세 구역으로 구분됩니다. 

비로자나불의 전당인 ‘비로전’과 득도의 전당인 ‘대웅전’, 그리고 지복(至福)의 전당인 ‘극락전’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 구역은 하나의 ‘현세 공간’과 두 개의 ‘천상 공간’을 상징하는데, 순수한 부처의 나라로 비로자나불이 존재하는 하나의 현세공간과, 아미타불의 낙원과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 이 두 곳이 천상의 공간 입니다.

비로전‧극락전‧대웅전을 포함해서 석단 위의 모든 공간이 곧 ‘부처의 나라’이고, 석단 아래의 공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세계 곧 ‘이승’입니다. 

바로 이 부처의 나라와 현실 세계를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교 이 두 쌍의 돌계단 다리로 연결해 놓은 것입니다.

 

오늘은 대웅전 구역 중에서 현실 세계인 대웅전 석단 아래와 부처의 나라 대웅전이 있는 석단 위를 연결해주는 국보 제23호 청운교와 백운교의 건축구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돌계단 다리를 말하는데, 이 다리는 다리 아래 현실 세계와 다리 위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 청운교를 푸른 청년의 모습으로, 그리고 백운교를 흰머리 노인의 모습으로 빗대어 놓아, 인생을 상징하는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만든 건축적인 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축적으로 본다면 그 형태는 엄연히 아래위 공간을 연결하는 돌계단이지만 이를 계단이라 하지 아니하고 청운(靑雲)과 백운(白雲) 뒤에 다리‘교(橋)’자를 붙여 청운교 ‧ 백운교로 부릅니다.

1767년 불국사사적(佛國寺事蹟)을 바탕으로 대암 국탄(大庵(巖)國坦)의 제자이며 청허 휴정(淸虛休靜) 서산대사의 7세손인 호암 귀은(浩巖 歸隱)이 지은 ‘불국사고금역대기(佛國寺古今歷代記)’에 돌계단 다리와 자하문의 순서를 ‘자하문-청운교-백운교’라 기록하고 있어서 위치적으로 아래쪽에 있는 돌계단이 ‘백운교’이고 위쪽에 있는 돌계단이 ‘청운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총 돌계단의 단수는 34단이며 이중 청운교가 16단, 백운교가 18단이며, 경사는 45°를 이루고 있습니다.

돌계단다리 아래쪽 구조는 대목(大木)이 무지개 모양의 곡선으로 짜맞추어, 이는 직선으로 맞춘 석재구조물의 무겁고 딱딱한 시선을, 보는이로 하여금 보다 부드럽고 생동감 있게 보이게 하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돌계단 다리 아래에 지금은 없지만 극락정토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구품연지(九品蓮池)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다리 왼쪽 석단에 구품연지로 흘러들어가는 물이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돌출된 반원형의 석조물이 남아 있어, 당시 이곳에서 물이 떨어지면 폭포처럼 부서지는 물보라에 의해 구품연지 위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떴다고 합니다.

또 청운교와 백운교가 이어지는 연결부분은 아치형 무지개모양의 홍예로 연결해 놓았고, 돌계단 다리 아래는 궁륭형으로 만들어 통행을 가능토록 하였습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서기 751년 신라 제35대 경덕왕 10년 때 세워진 것이며, 당시의 돌계단다리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매우 귀중한 유물입니다.     

또한, 무지개모양으로 이루어진 다리 아랫부분은 우리나라 돌다리나 성문(城門)에서 보여지는 아치모양의 홍예교나 홍예문의 초기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불국사 대웅전에 이르는 자하문 아래 청운교와 백운교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