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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장(破器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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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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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장(破器匠)

조선시대 도자가마에서 나오는 완성품을 두고 깨뜨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감별하는 파기장(破器匠)이라는 직책이 있었다. 파기장은 ‘깰 것이냐 말 것이냐’를 가늠하는 미적 검열관으로 5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직업이다. 관영사기제조장인 사옹원(司饔院)의 분소인 분원(分院)에 소속된 그들은 주로 궁궐이나,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실용적이고 기술적인 수준에서 요구되었던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일 뿐 엄격한 예술적 재단으로 그 일을 수행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에게 남은 백자항아리들을 돌아다보다가, 그들이 거칠고 뒤틀린 것들을 파기하지 않고 살려놓은 것을 보고 있자면 과연, 파기장은 파격의 깊은 멋도 알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파기장에게는 도자기의 완성도를 엄정하게 평가하는 날카로운 안목과,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것은 가차 없이 부수는 추진력, 그리고 도공과의 인정에 연연해하지 않는 사리분별이 요구된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흔히 산고(産苦)에 비유한다. 밤을 지새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탈진에 이르면서도 자신의 모티프를 포기하지 않는 예술의 세계에서, 엄격하게 말해 파기장은 문화와 예술의 생산자 자기자신이다. 그렇지만 자기제어가 결핍된 문화의 소산을 우리는 이 백화난만의 시대에 얼마나 많이 보고 있는가. 또 그 문화답지 못하고, 예술답지 못한 것에 인정이 만든 이런 상, 로비가 만든 저런 상으로 어줍잖은 얼룩진 포장지가 씌워지면 그것은 유성펜처럼 쉽게 지울 수가 없는 역사가 되어버린다. 그러고는 역사는 정직하고, 준엄하다고 정색해서 말한다. 많이들 봤지만, 그 준엄한 역사는 학력위조나, 표절시비로만 깨어질 뿐이다.

문화생산자, 문화중개자, 문화소비자 그리고 문화행정당국까지, 누가 이 시대에 파기장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를 둘러싼 불량문화를 깰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심지 굳은 파기장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가. 이 땅이 품고 있는 역사와 전통위에서 또 하나의 역사를 일궈낸다는 각오로 파기장의 역할을 해야 할 이는 대접받는 원로, 흔들림 없는 비평, 그것으로 여론화 할 수 있는 미디어가 그 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존심을 건드려서도 안되고,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않는 잣대는 거두어야하고, 기준과 표준을 넘은 억지이론은 곤란하다는 쯤은 다들 인식하고 그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비평을 선도해야 할 지역미디어업계에 이제 시인, 작가, 화가, 연극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문화의 나아갈 길을 향도하는 체화된 소식은 찾아보기 어렵고, 사건취재식으로 문화현상만 전해줄 뿐이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절래 절래 고개를 흔든다. 비평이라는 힘든 일을 굳이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비평이 없다는 것은 논쟁이 없다는 것이고, 논쟁이 따르지 않는다는 말은 본질을 찬찬히 따져보는 예의가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님에도, 사람들은 비평을 비판, 시비와 싸움의 비슷한 말 쯤으로 이해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장탄식을 한다. 언젠가 내가 파기장이라 생각했던 한 평론가가 자기 글로 명예훼손혐의로 고발당하고 혼잣말처럼 한 그 젖은 목소리를 기억한다. “저놈들은 애초에 명예라고는 없는 존재들인데,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저 난리들이니...나 원 참!”

호된 비평이 없는 대구에 매운 것은 떡볶기 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 그 매운 떡볶기를 또 하나의 문화로 자랑삼는 시대가 되었으니 많은 것이 호도(糊塗)되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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