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뺏거나 뺏기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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뺏거나 뺏기거나

역사와 전통을 소재로, 지역발전의 신성장동력으로 대두된 문화콘텐츠시장은 바야흐로 전쟁터다. 이름하여 '문화전쟁'이다. 60년대 군대 담벼락에 씌여진 구호-전쟁에는 2등 없다. 먼저보고 먼저 쏘자-처럼, 먼저 연구하고, 찾아내고, 만들어서 최상품의 문화콘텐츠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케케묵은 잡학들이 쏟아져 나오고, 안목없는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콘텐츠는 잇속을 차리는 사람들에 의해 크게 좌지우지되어, 향유를 강요 당하는 경우도 많이 보아왔다.

인물콘텐츠, 인물마케팅은 한 인물의 생애와 인연을 강조하면서 생겨난다. 태어난 곳, 죽은 곳이 맨 먼저이고, 뚜렷한 족적을 남긴 무대가 그 다음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팩트와 픽션이 합쳐진 팩션(faction)의 시대이다. 팩션의 시대에는 오히려, 픽션의 주인공이 자리잡는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얘기다. 황순원의 소나기 마을, 흥부마을, 놀부마을, 변강쇠묘, 옹녀묘, 홍길동마을, 남원도 픽션<춘향전>의 무대이다.

경북여관에 엎드려 은박지그림을 그리던 화가 이중섭의 추억도 제주도가 가져갔고, <꽃>의 시인 김춘수, 대구여고 교장을 지낸 청마 유치환도 고향인 충무로 되돌아갔다. 현제명의 예술성도 친일의 이름으로 잊혀지고 있고, 빙허 현진건은 그냥 그렇게 교과서에 대표작 <빈처> 한 편으로만 살아있는 것 같다.

대구의 <군인극장>이 사라지고, 한국전쟁때 르네상스를 일군 종군예술가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목숨을 버린 동학교주 수운 최제우는 대구땅에선 흔적도 없다. 요절한 김광석으로 대구를 포크음악의 도시로 만들어 볼 수도 있었는데 아쉽다.

피난시절의 절창 <굳세어라 금순아>도 대구에서 태어난 노래임에도 부산 영도다리 밑에서 나온 걸로 아는 마당에, <미사의 노래>, <전선야곡>은 딴동네 이야기인 줄로 다들 알고 있다. 그런 마당에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도 그냥 둬서는 안된다. 국악으로 가면, 박녹주 명창, 강소춘 명창도 전설따라 삼천리쯤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불세출의 스타 신성일을 위해서는 <청춘영화박물관>이 생기면 좋겠고, 김수환 추기경의 인연처는 <생명을 위한 성소>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 아닐까.

호암 이병철의 재조명을 계기로, 대구땅, 대구사람들의 이야기가 세계화되고, 많은 이의 공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문화콘텐츠은 잊거나 기억하거나, 잃어버리거나 되찾거나, 먹거나 먹히거나, 떠나거나 돌아오거나로 판가름나게 된다. 아니, '문화전쟁'이 벌어지는 오늘날에는 '뺏거나 뺏기거나'로 판가름 날 것이다. 문화전쟁도 마찬가지로 2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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