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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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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스님의 시사칼럼] 말씀의 달인 부처님의 횡설수설

문정용 2021-12-22 15:48:41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시사칼럼

■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봉덕동 상락선원장 비구 혜문입니다.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만동자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요즘 말로 엉뚱한 구석이 많았던 인물로 보여집니다.
만동자는 수행정진 중에 뜬금없는 의문을 가지고 부처님께 여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홀로 선정에 들어있을 때, 세계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세계는 끝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영혼은 육체와 같은가, 다른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라고 하면서,

이런 의문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고 만약 답변을 주지 않으면 부처님 곁을 떠나겠다고 생떼를 썼다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신이 일으킨다는 어떤 조화라든지 우주의 존재 원리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한 답변을 거부하셨는데, 이는 연기의 도리에 맞지 않고 올바른 수행도 아니며, 해탈ᐧ열반으로 나아가는 길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평소에 부처님께 쏟아지는 수많은 질문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입장을 가지고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단정적인 대답으로 일향기(一向記)라고 합니다.
일향기식 대답은 ‘생성된 것은 모두 사라지는가?’ 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반드시 사라진다.’라고 단정지어 대답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조건에 따라 대답하는 것으로 분별기(分別記)라고 합니다.
분별기식 대답은 ‘중생은 모두 윤회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번뇌가 있는 자는 윤회에 들고, 번뇌가 없는 자는 윤회를 멈춘다’라고 조건적으로 대답하는 방식입니다.

셋째는 다시 되물어서 대답해주는 반문기(反問記)가 있습니다.
반문기식 대답은 ‘인간은 뛰어난 존재인가?’라고 질문을 받았다면 ‘무엇과 비교해서 질문하는가?’라고 다시 물은 뒤, ‘깨달은 자와 비교한다면 열등하고, 짐승과 비교한다면 뛰어나다’라고 대답하는 형식입니다.

넷째는 만동자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해 사치기(捨置記)로 대답하는 것입니다.
사치기식 대답은 무기(無記)라 하여 대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질문에 대한 논의 자체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현실의 괴로움 해결과 깨달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네 가지 방식을 써서 대답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횡설수설(橫說竪說)’이라고 하는데, 이는 부처님께서 ‘질문자를 깨우쳐 주기 위해 어떻게 말씀을 하시더라도 조리에 맞게 잘 전개되어 절대로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오직 부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을 두고 ‘횡설수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는 ‘횡설수설’이라는 말이 ‘조리 없는 말을 이러쿵저러쿵 지껄인다’로 쓰이고 있으니 본래의 뜻과는 정반대로 사용되고 있는 셈입니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횡설수설한다’라고 하면 ‘말을 조리있게 잘한다’는 칭찬이 되는 말인 본래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데 다행스럽습니다.

요즘 대선주자들이 자신의 대권에 방해가 될 온갖 의혹에 대해 답변하는 내용을 두고 본다면, 본래의 뜻인 횡설수설하는 것인지, 변형된 의미의 횡설수설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머지않아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겠지요.

정치꾼들은 정당을 구성하여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어떤 횡설수설을 하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이지만, 우리 불자님들은 배우고 수행하고 실천함으로써 부처님처럼 횡설수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이 동짓날입니다.
불교계에서 동짓날은 보시와 나눔의 날로 선업을 쌓아가는 문화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코로나19를 넘어 오미크론까지 확산되자 방역지침이 더욱 강화되어 인심이 흉흉해진 느낌인데, 동짓날 사찰에서 주는 새 달력을 받고 팥죽도 나눠 먹으며 조심스럽게 이웃과 소통하는 따뜻한 정의 끈은 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