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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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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스님의 시사칼럼] 반복되는 부처님오신날의 흔적

문정용 2022-05-12 16:05:00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시사칼럼

 

■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봉덕동 상락선원장 비구 혜문입니다.

 

부처님오신날이 드는 5월은 언제나 훈훈하고 정겨운 달입니다. 

이러한 때, 출가하기 전인 10대 시절의 생활이 떠올라 잠시 회상해보겠습니다.

 

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저의 열악한 주위 환경으로 인하여 모처의 교회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만고만한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교회 생활은 참으로 재미있었습니다. 

여학생들과 함께 신나게 부르던 찬송가는 더없이 큰 즐거움이었고, 성경 구절 암송대회에 나가 입상하여 상품을 타는 일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찬송가 중에서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가삿말이 당시 저의 상황에서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던 내용이어서 50년이 넘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각인되어 지금도 술술 잘 부를 수 있습니다.

가사가 이렇습니다.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 되시고, 나에게 밝은 빛이 되시니 길 잃어버릴 염려 없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앞 구절만 한 번 불러 보겠습니다.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 되시고, 나에게 밝은 빛이 되시니 길 잃어버릴 염려 없네. 

 

이랬던 저의 생각에서 교회에서 주장하는 교리에 대해 의구심이 들게 되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생겨났습니다. 

모든 우주 만물을 신이라는 창조주가 만들었고, 우리 인간도 당연히 창조주의 피조물이라는데, 어찌하여 우리 인간은 이처럼 차이가 날까?

배움의 성적은 우수하나 생활이 궁핍하고, 학교 성적은 저조하나 부유한 생활을 하는 또래들, 왜 창조주는 이처럼 차이가 나게 끔 만들었을까?

이 의문의 속뜻은 나는 왜 생활이 궁핍하고 저들은 왜 부유하게 사느냐 하는 불평과 불만을 가진 사회에 대한 반항심이었습니다.

 

이런 의문들이 생기기 시작하여 하루는 담임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창조주는 왜 인간을 공평하게 만들지 않고 이처럼 차이가 나도록 만들었을까요?’ 이는 나를 왜 이렇게 궁핍하게 만들었느냐는 물음이었겠지요?

목사님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주님께서 너를 더 크게 쓰시려고 지금 시련을 주고 계신 것이다.’

 

이 답변에 저는 강한 실망감이 밀려 올라옴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크게 쓰시려면 이런 시련을 주기 전에, 처음부터 부유한 집 셋째 아들로 만들었으면 이웃과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아주 쉽게 할 수 있을 것인데~~~’

하고 말입니다. 

 

이후로 저는 더 이상 바이블이라고 하는 책의 내용에 흥미를 잃어 교회는 관심 밖의 대상이 되어 버렸고, 어느 날 출가의 길로 들어서서 불교의 업설에 대한 가르침을 접하고 세상살이의 차이는 각자가 지은 업력에 의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고 나니 사회에 대한 반감은 사라졌고, 창조설에 대한 사고는 내 생각에서 아예 지워져 버렸습니다. 

이상이 제가 한때 몸담았던 교회와의 인연이었습니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면 교회 쪽 사람들이 서울 조계사를 비롯한 각 사찰 일주문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등, 사회에서 지탄 받을 행동을 해왔었는데, 올해는 조용히 넘어가나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고, 경주 기림사에서도 소란을 피운 교회 쪽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반면에 은해사 쪽에서는 훈훈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천주교 김희중대주교께서 은해사를 방문하여 경축 메시지를 전달하시고 극락보전을 참배하며 부처님께 향 공양은 물론이고 삼배의 예를 올려 불교적 예법을 다해 불교에 대한 존중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종교계 지도자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를 몸소 보여줌으로써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도록 하신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이십니다.

대주교께서 삼배의 예를 올렸다 하여 우상숭배가 되지 않고, 스님이 찬송가를 목청껏 불렀다 하여 깨달음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고, 용산 대통령 시대에 내세운 단어가 소통 강화이므로 관용불침이요 사통거마란 의미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