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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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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스님의 시사칼럼]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는데

문정용 2023-01-05 16:36:15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스님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스님

■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시사칼럼

 

■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봉덕동 상락선원장 비구 혜문입니다. 

 

2022년을 역사의 뒤안길로 남기고, 2023의 동아줄을 붙잡고 오늘도 힘겹게 달려가는 삶들이 있습니다. 

삶의 동아줄을 놓자니 두려움이 앞서고, 붙들고 따르자니 손바닥이 헐고 발바닥이 부르틉니다.

인생의 동아줄이 차라리 끊어져 버리기를 바라지만, 이 줄은 왜 이다지도 질기고 질깁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인생길을 ‘고해의 바다’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참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이 사바세계에 와서, 안·이·비·설·신·의라는 육근을 가진 우리는 색·성·향·미·촉·법이라는 육경과 각각 만나면서, 즐거운 듯 하다가 이내 괴로워지고, 괴로움은 그대로 괴로움이며, 무덤덤했던 것은 즐거운 듯 괴로워지거나 그대로 괴로움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만들어 내니, 이렇게 여섯 구역에서 세 가지씩을 만들어 낸 열여덟 가지를 중생들이 괴로워하는 고의 바탕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 열여덟 가지는 정신적 측면과 육체적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하니 서른여섯 가지가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렇게 펼쳐질 것이니 이를 합쳐 백여덟 가지 괴로움, 즉 백팔번뇌라고 정리하였던 것입니다. 

 

중생은 이 백팔번뇌에 감염되어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 인생길 동아줄을 놓지 못하고 오늘도 괴로움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형국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맞닥뜨리는 교통지옥, 직장에서의 힘겨운 업무, 퇴근길 대인관계에서의 갈등, 연일 터져 나오는 정치권의 추악함, 경제적 부담에 휘청거리는 허리,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을 겨우 쉬려니 난방비 생각에 포근한 잠도 못 이루는 밤, 또다시 이어지는 일상 모두가 괴로움의 연속인 이런 삶이 깊은 병마에 시달리는 병자와 흡사한 일생길입니다.  

 

어느 경전에 따르면, 보살은 자비로워 중생이 앓고 있으면 보살도 따라서 앓는다는데, 이 시대에 보살은 중생을 따라 앓지만 하지 말고 어떠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예로부터 대구 지역 사람들은 팔공산을 두고 중생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보듬는 약사여래 도량으로 간주하여 팔공산 동화사에 약사여래불상을 우뚝 세워 놓고 중생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있으며,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 주신다는 팔공산 갓바위 관봉석조약사여래불상을 찾는 중생들의 발길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구 수성구 파동에는 장암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고, 그 사찰을 바라보며 좌측 산길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서 봉우리 쪽으로 잠시 걷다 보면 우측에 제법 장엄한 암벽이 있고 그 암벽에도 소박하게 새겨진 약사마애불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마애불이란 바위 벽면을 다듬어 새긴 불상이고, 학계에조차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불상을 저는 ‘앞산마애약사여래불’이라고 부릅니다. 

 

언제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새겨졌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는 이 마애불상은 맑게 흐르는 신천의 상류, 상동과 파동 그리고 가창의 주민들을 굽어보고, 우뚝 솟은 용지봉을 바라보며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제일 먼저 맞이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 앞산약사마애불상과 인연이 맺어진 후로 매년 1월 1일, 해돋이 시간이 되면 그곳에서 해맞이를 하고 새해 첫 예경을 올리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두운 새벽길을 올라 해맞이와 함께 첫 공양물을 올리고 예경을 마쳤습니다.

 

해돋이로 밝아진 파동 지역을 바라보니 예년과 많이도 달라졌더군요.

소박했던 주민의 삶터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그 아파트 숲속에 의탁해 살면서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꿈을 꾸겠지만 질기고 질긴 생로병사의 동아줄은 오늘도 이어집니다.

 

올해는 굳이 약사여래께 의탁하지 말고 스스로 백팔번뇌를 끊는 수행의 원년으로 삼기를 발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