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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옥포 용연사 금강계단 상세보기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옥포 용연사 금강계단

정민지 2023-05-19 09:30:02

▪︎ 출연: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아침칼럼’ (2023년 5월 19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입니다. 
오늘은 대구 달성 옥포 용연사 금강계단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금강계단은 불사리를 모시고 수계의식을 집행하는 의뢰 공간을 말하며, 금강이란 금강보계(金剛寶戒)에서 유래된 말이므로 금강과 같이 보배로운 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불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는 부처가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 
금강계단의 전면에는 적멸보궁이라는 편액을 건 전각을 건립하는데, 그곳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것은 금강계단에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사리가 봉안되어 있어 예배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금강계단은 인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중국에는 당나라의 도선이 정읍사의 금강계단을 건립하였고, 우리나라에는 당나라에서 불사리를 얻어 귀국한 자장이 양산 통도사에 최초로 금강계단을 만들었습니다.

통도사의 금강계단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친 것이지만, 불사리를 봉안한 중앙의 석종형 부도와 함께 사방에 2단의 석단을 형성하고 있어서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전통 금강계단 형태를 잘 간직한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양산 통도사의 금강계단과 함께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개성 불일사 금강계단과 대구 비슬산 옥포 용연사의 금강계단, 그리고 김제 금산사의 방등계단 등이 있습니다. 


보물 제539호로 지정된 대구 옥포 용연사 금강계단에 봉안된 석가모니 사리는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 자장 법사가 중국에서 구법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져온 것으로, 두 개의 함에 넣어 통도사에 봉안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천592년 임진왜란 때 통도사에 금강계단 사리를 도난당한 후, 사명대사에 의해 다시 수습되었고, 서산대사가 사리함 하나는 태백산 보현사에, 나머지 하나는 통도사에 안치하도록 명하였지만 사명대사의 입적으로 실천에 옮기지 못하였고, 강원도 치악산 각림사에 일시 봉안하였다가 1673년 조선 제18대 현종 14년 5월 5일에 대구 옥포 용연사에 금강계단을 건조하고 봉안하게 되었습니다. 
옥포 용연사 금강계단은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는 보광루 아래 계단을 올라서면 적멸보궁이 있고 그 뒤에 위치해 있습니다.


정사각형의 이중 기단 위에 원형의 굄대가 겹으로 새겨진 굄돌을 놓고 그 위에 석종형 탑신을 올려 놓았습니다. 
탑신은 절에서 흔히 보는 범종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윗부분은 구슬 무늬를 한 줄로 두른 뒤 겹으로 된 연꽃무늬를 한 바퀴 돌리고 그 위에 연꽃 봉우리를 새겨 마무리하였습니다.

금강계단의 상층 기단은 갑석 아래 사방으로 귀 기둥을 세우고 각 면 가운데에 탱주를 새겨 사면을 여덟 칸으로 나눈 뒤 각 칸마다 손에 무기를 들고 눈을 부릅 뜬 팔부중상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금강계단의 하천 기단은 장대석을 이중으로 쌓아 마감하였는데, 기단 네모서리에 원래는 사천왕상이 있었으나 몇 차례 도난을 모면한 뒤에 아예 극락전 안으로 옮겨 두었기 때문에 지금은 볼 수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오늘은 대구 비슬산 옥포 용연사 금강계단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