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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김천 청암사 상세보기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김천 청암사

정민지 2023-06-02 17:42:32

▪︎ 출연: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아침칼럼’ (2023년 6월 2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입니다. 

오늘은 경상북도 김천 청암사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해발 천317m의 불령산에 위치한 청암사 가람은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 말사로 859년 신라 제47대 헌안왕 3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입니다.

청암사는 1689년 조선 제19대 숙종 15년에 숙종의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가 폐위된 뒤 이곳 청암사에 잠행하여 복위를 빌고 5년 만에 다시 왕비로 복위되었던 일로 유명합니다. 당시 극락전 남별당에 인현왕후가 머물렀다고 합니다.

사적에 따르면 1647년 조선 제16대 인조 25년에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허정 혜원 스님이 청암사를 중창하였다고 합니다.

인현왕후가 청암사 극락전에서 특별기도를 올린 인연으로 그 후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불영산의 적송산림은 국가보호림으로 지정되었고, 조선시대 말까지 상궁들이 신앙생활을 하던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청암사 승가대학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승군을 이끌었고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킨 남한산성을 완성시키고 고려와 조선시대 역대 실록을 보관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설치한 사고를 보호한 벽암 각성 스님의 강맥을 이은 대화엄 종장 모운 진언이 강교(講敎)와 설선(設禪)의 꽃을 피웠으며, 1711년경 벽암 각성, 모운 진언, 보광 원민 조사의 법맥을 이은 화엄학의 대강백 회암 정혜조사는 청암사 강원을 발전시킨 대강백입니다.

 

청암사 대웅전 건립은 본사 창건 당시인 859년 신라 헌안왕 3년 도선국사에 의해서 이루어 졌고 1647년 조선 제16대 인조 25년 허정 혜원조사가 중창한 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12년 대운화상이 다시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청암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2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웅전 불단(佛壇)에 모신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한 선정인의 수인을 하고 있는 석가여래불상은 1921년 대운 화상이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 있는 영은사(靈隱寺)에서 조성하여 이곳 대웅전에 봉안하였습니다.

 

약간 살집이 있어 보이는 부처님의 상호(相好), 좁은 어깨를 덮은 통견의 옷주름, 머리 위에 육계(肉髻)는 없고 계주(髻珠)만 크게 박혀있는 머리, 기름진 얼굴모습, 진홍빛의 가사 안자락 표현등 청나라 말기 중국 불상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고, 대웅전 후불탱화는 당대의 화승 이혜고, 김계은, 홍한곡이 그린 것으로 부처님의 12제자, 8대보살, 4천왕이 옹호하고 있는 모습으로 당시의 대표적인 불화이며, 산신탱화, 신중탱화, 칠성탱화, 독성탱화도 모두 같은 화승의 작품입니다.
 

오늘은 김천 청암사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