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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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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스님의 시사칼럼] 살아있는 자들의 비애

문정용 2023-07-19 15:19:12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스님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스님

■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시사칼럼

 

■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봉덕동 상락선원장 비구 혜문입니다. 

 

불교는 종교적으로 인간 중심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반면 이웃 종교관은 신을 찬양하고 신을 받들어서 신을 통해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조절하려는 입장이지만, 불교는 그들과 생각을 달리합니다. 

 

인간 중심의 생각을 가진 불교에서는 무정물이라도 형성되었다면 반드시 일정기간 머물다가 다르게 변해가면서 소멸 되는 과정을 거치고, 유정물도 예외 없이 태어났으면 늙고 병들어 죽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과정은 어떤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신이라는 존재자의 조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벌어지는 인연 관계에서 생성되고 소멸 되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과정이 연속되는 자연생태계에 태어났고, 자라서 늙어가며, 병들고 죽어갑니다. 

지금도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윤회하고 있는 현실을 밝힌 것이지요.  

 

부처님께서도 생로병사하는 과정에서 태어나신 지 일주일 만에 어머님의 죽음을 경험하시고 이모님의 품 안에서 성장하셨습니다. 

이처럼 현존하고 있는 우리들은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데, 그 죽음을 바라보는 심정은 어떠할까요?

 

조선시대를 살았던 진묵스님은 당신 어머님의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태중시월지은 하이보야, 슬하삼년지양 미능망의. 만세상갱가만세 자지심유위혐언, 백년내미만백년 모지수하기단야, 단표로상행걸일승 기운기의, 횡차규중미혼소매 영불애재, 상단료 하단파 승심각방. 전산첩 후산중 혼귀하처, 오호애재!

천하에 명문이라고 하는 이 제문은 진묵스님께서 지으신 것으로 돌아가신 어머님을 그리워하는 내용인데 ‘진묵스님의 사모곡’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가져 태중에서 열 달을 품으신 그 은혜를 어떻게 갚으리까?

태어나 슬하에서 삼 년을 키우신 은혜도 잊을 길 없나이다.

만세를 사시고 만세를 더 사신다고 하더라도 자식의 마음은 오히려 부족하온데, 백 년 안에서 백 년도 못사셨으니 어머님의 수명은 어찌 이다지도 짧으십니까?

거지처럼 떠돌아다니는 이 중이야 이미 그렇다손 치더라도 혼인도 못 하고 규중에 혼자 남은 누이동생이야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상단 불공도 마치고 하단의 제사도 끝나서 스님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처소로 돌아가고 혼자 남아서 먼 하늘을 바라보니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도 겹겹인데 어머니의 영혼은 어디로 돌아가셨단 말입니까?

오호라! 애닯고도 슬프도다.

 진묵스님의 어머님을 향한 그리움이 잘 나타나 있는 글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미 태어난 존재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 죽음 맞이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고, 자연스럽지 못했을 때,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요즘 장례예식장의 분위기는 100세를 바라보는 노인들의 자연스러운 죽음이 대부분이어서 통곡을 하면서 울부짖는 일이 없고, 잔잔한 정적만이 흐른다고 합니다. 갑작스런 죽음에는 통곡과 오열이 따르고, 자연스런 죽음 앞에서는 침묵이 정답입니다. 

 

예수라는 인물은 33세에 십자가형으로 죽음을 맞이하였기에 그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통곡을 하면서 울부짖듯이 살고, 부처님께서는 80세에 자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하셨기에 불자들은 차분하고 고요합니다. 

 

요즘 근래에 보기드문 자연재해로 갑작스런 죽음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런 죽음이 신이라는 절대자의 조작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는 순종하며 따라야 할 일이라지만, 왜 그런 조작을 부리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갑작스런 죽음은 신이라는 절대자의 조작이 아님을 알고 있고, 이미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라지만 그 죽음을 바라보는 유족들은 비통함과 애통함에 가슴을 치며 통곡합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자들의 비애라는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고인이 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면서,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할 뿐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마하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