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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상세보기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정민지 2023-07-30 14:05:01

▪︎ 출연: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아침칼럼’ (2023년 7월 28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입니다. 

오늘은 신라인들의 불국정토였던 경주남산 정상에 새겨진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의 내력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천년이 지나도록 신라인들의 불심이 살아 숨쉬는 경주 남산은 1968년 12월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그 이후 1985년에 경주 남산일대가 사적 제 311호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 12월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경주 남산은 남북으로 8km, 동서로 4km에 이르는 산으로, 완만한 동쪽과 골이 깊은 서쪽으로 나누어 집니다.

면적은 축구장 크기의 약 4천200배에 이르는 30k㎡에 63개의 계곡과 180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가장 높은 ‘고위봉’은 해발 494m입니다.

경주 남산의 동쪽에는 ‘낭산’과 ‘명활산’이 있고, 서쪽에는 ‘선도산’, ‘벽도산’, ‘옥녀봉’이 있고, 북쪽에는 ‘소금강산’과 ‘금학산’이 인접해 있습니다.

 

경주남산에는 63개의 계곡을 따라 147개소의 사찰이 조영되면서 지금까지 총 100여구의 불교관련 존상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처럼 사찰과 불탑과 불교 존상들로 가득 찬 경주 남산은 신라 천년 동안 신라인이 꿈꾸어 온 불국정토였습니다.

보물 제199호인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은 경주 남산의 동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동쪽에는 토함산과 마석산을 시원으로 해서 형산강으로 흐르는 남천을 경계로 동방동이 있고, 북쪽에는 인왕동과 배반동이 있으며, 남쪽에는 평동이 있고, 서쪽에는 남산을 경계로 탑동과 배동 그리고 내남면이 인접해 있습니다.

이 마을들은 약 2,000여 년 전에 박혁거세의 손자인 신라 제3대 유리왕 9년에 ‘사량부’라 칭하다가 천100여 년 전 고려 태조 23년에 ‘남산부’로 개칭한 것이 이 마을들 이름의 시원입니다.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이 위치한 ‘봉화곡’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제1사지 동남쪽 해발 476m의 ‘봉화대봉’에 있던 ‘봉화대’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봉화골’은 남산의 동측 계곡 가운데 가장 깊은 골짜기인데, 인접한 곳에 입적한 승려들을 다비하던 ‘승소골’과 감실이 많은 ‘천동골’ 그리고 신라 때에는 교통이 빈번했다는 ‘홈태골’이 있습니다.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후에 지금까지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으로 지속적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마애보살 반가상에 대한 조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시기부터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신선암’은 마애불 근처에 있었던, 풀로 지붕을 엮은 작은 암자의 이름인데, 원래의 절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1940년에 간행된 ‘경주남산의 불적’에 따르면 ‘신선암 마애반가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시기에 일제 조선총독부는 1931년 ‘조선고적연구회 경주연구소’를 설치하여 남산의 불교유적 조사를 하고, 1939년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을 ‘보물 고적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습니다.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에 대한 사진과 도면에 대한 해설은 1940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된 ‘조선보물고적 도록, 경주남산의 불적’에 실려 있습니다.

 

오늘은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 내력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