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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탐방

안동 봉정사 상세보기

안동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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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 봉정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가진 봉정사는 요즘 사람들이 갈망하는 맑은 물,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곳이며 점차 번잡해 가는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조용한 한국산중 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신앙인에게는 더없이 좋은 수련의 장소이기도 하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 중 하나인 봉정사의 최초 창건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의 창건이라는 기록과 능인대덕의 창건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대체로 능인대덕의 창건으로 보고 있다.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능인대덕이 수도를 한 후 도력으로 종이 봉(鳳)을 만들어 날렸는데, 이 종이 봉이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그 뒤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15호인 극락전, 보물 제55인 대웅전, 보물 제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이 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가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영국의 여왕이 다녀가기도 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창건 이후의 뚜렷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참선도량 (參禪道場)으로 이름을 떨쳤을 때에는 부속 암자가 9개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6·25 전쟁 때 인민군이 머무르면서 사찰에 있던 경전과 사지(寺誌) 등을 모두 불태워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없다.
봉정사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지닌 곳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봉정사의 역사에 대하여 알려주는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창건에 관한 사실도 전설에 상당한 부분을 의존하고 있고 그 이후의 역사적 사실도 몇 차례 중수한 것을 제외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은 전무한 편이다. 얼마 전까지는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극락전의 옥개부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1972년에 실시된 극락전의 완전한 해체 복원시에 상량문에서 발견되어 지금까지 한국에서 최고 오래된 목조 건물이 봉정사 극락전(국보15호)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극락전의 건립 연대는 적어도 12세기 이전으로 추정된다.
2000년 2월 대웅전 지붕보수공사 과정에서 사찰 창건 연대를 확인해주는 상량문과 대웅전 내 목조 불단에서 고려말에 제작했다는 묵서가 발견돼 현존 최고의 목조건물이 극락전에서 대웅전으로 바뀔 것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대웅전 지붕의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 북서쪽 종보 보아지에서 발견된 ‘宣德十年乙卯八月初一日書’(중국연호인 선덕 10년 <1435년, 조선조 세종 17년>에 쓴 글) 라고 적힌 상량문에는 당시 봉정사의 사찰 규모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어 대웅전 창건 연대가 1435년 중창 당시보다 500여 년이나 앞선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대웅전 내 불단 바닥 우측에서 ‘辛丑支正二十一年 鳳亭寺 啄子造成 上壇有覺澄 化主戒珠 朴宰巨’(지정 21년 <1361년, 공민왕 10년>에 탁자를 제작, 시주하다. 시주자 박재거)라고 적힌 묵서명도 처음 확인, 대웅전 불단이 현존 최고의 목조건물임이 판명되었다.
특히 새로 발견된 상량문에는 2층 누각 신축, 단청을 한 시기,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토지, 사찰규모 등을 알려주는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조선초 당시 봉정사는 팔만대장경을 보유하고 500여 결(1만여평)의 논밭에다 안거스님 100여 명에 200여 명의 노비까지 거느린 모두 75칸의 대찰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