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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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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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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사大典寺


대전사(주지 법일)는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200번지 주왕산(周王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말사이다. 주왕산은 11개의 봉우리와 7개의 기암괴석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일명 석병산(石屛山)이라고도 하는데, 197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찾아가는 길은, 청송에서 31번 국도로 가다가 청운리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상의리로 들어가는데, 여기에 대전사가 나온다.
대전사(大典寺)는 672년(신라 문무왕 12) 의상(義湘)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919년(고려 태조 12) 눌옹(訥翁)이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따서 중창하였다. 이처럼 대전사와 주왕산 모두 주왕의 설화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주왕내기(周王內記)』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의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이에 당나라에서 신라에 숨은 주왕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없앴다고 한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왕산의 이름에 대해서는 다른 말도 있으니, 신라의 주원왕(周元王)이 수도했던 산이라서 그렇게 부른다는 설도 있다. 주원왕은 태종무열왕의 8대손인 김주원(金周元)을 말하는데, 김주원이 훗날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 ~ 798년)이 되는 김경신(金敬信)에게 밀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자 이곳에서 수도를 하다가 지금의 강릉인 명주(溟州)로 가서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문헌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周房寺)’로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惟政) 스님이 승군을 훈련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당우가 소실되었고, 1672년(현종 13)에 중건하였다. 1751년(영조 27) 실학자 이중환(李重煥)이 쓴 『택리지(擇里志)』에는 대전사가 신선과 스님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이 절에는 예로부터 수 많은 시인과 묵객, 선승이 머물렀던 적이 있다고 한다. 예컨대 신라의 최치원(崔致遠), 고려의 나옹(懶翁)·도선(道詵)·지눌(知訥), 조선의 무학대사(無學大師)와 서거정(徐居正)·김종직(金宗直) 등이 그들이다.
대전사에는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인 보광전이 있다. 보광전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1층 건물로 기둥 위에서 지붕을 받치는 공포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의 건물이다. 내부에는 자비의 부처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공포의 모양은 조선 중기 이후 목조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전사에서 30분쯤 걸어가면 계곡 높이가 50 ~ 100m나 되는 망월대에서부터 병풍바위, 급수대, 학소대, 시루봉 등 다양한 기암절벽들이 나온다. 학소대 위쪽에는 사면이 병풍바위로 둘러싸인 주왕산 제1폭포가 나온다. 옥같이 맑은 물이 쏟아내리고 있는 제1폭포 바로 위에는 선녀탕과 구룡소가 있다.
1km 정도 더 오르면 아담하고 빼어난 경치를 감싸안고 있는 제2폭포가 있다. 왼편으로 500m 움직이면 웅장하면서 거대한 2단의 제3폭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