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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공부

부처님의 육성을 느끼는 아함경1-장아함경 5. 소연경 상세보기

부처님의 육성을 느끼는 아함경1-장아함경 5. 소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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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경은 북전 장아함경 제5경으로서, 부처님이 바실타에게 인도의 계급제도인 4종성제도(바루나제도, 후에 카스트제도. 계급을 브라만교 사제인 바라문, 왕, 귀족, 무사계급인 크샤트리아, 평민인 바이샤, 천민인 수드라로 나누고 계급간의 차별을 엄격히 함)에 대하여, 바라문 종성이 다른 종성보다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어느 종성이라도 선행을 닦으면 좋은 과보를 받고 나쁜 행을 지으면 나쁜 과보를 받는다고 하였으며, 불법 가운데는 빈부 귀천의 차별이 없이 도를 성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소연경에는 사회 제도의 기원에 관한 부처님의 관념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본래 광음천에 살았는데, 이 땅에 내려와 음식을 탐하는 마음에 따라 몸이 탁해지고 수명이 짧아져 왔으며, 이윽고 쌀을 저축하고 훔치게 됨에 따라 합의에 의해 왕을 선출하여 다스리게 하였다는 것이다. 불교는 절대자에 의한 천지 창조나 조물주의 창조를 인정하지 않으며, 세상은 인연에 의해 형성되고 흘러왔으며, 사회 제도 또한 절대이성이나 절대자의 뜻이 아니라 사회인의 합의에 의하여 형성된 것으로 본다. 합의에 의한 왕의 선출, 시민의 공의에 따른 왕의 업무 집행은 초기 공화제 형태로서, 불교가 성립할 당시 작은 국가들은 공화제 형태를 많이 채택하고 있었고, 부처님이 태어난 카필라바스투 또한 그러했다. 이 공화제 체제를 가나 혹은 상가(승가)라고 불렀다. 부처님께서 수행자의 집단을 구성하고 거기에 당시로서는 너무나 혁신적인 민주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모임에 상가(승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분명 부처님께서 공화제 국가 시스템을 어릴때부터 경험했다는 것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그러나 부처님께서 만년에 들어 카필라가 멸망하고 밧지국이 마갈타국에 점령되는 등 공화제 체제는 절대왕권을 구축한 전제군주국가에게 복속되었다.

이런 점들을 미리 생각하고 경전을 차근히 읽어나가면 부처님께서는 참 논리적이면서도 자상한 분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함경은 부처님의 육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가까이 두고 읽기에 아주 좋은 경전이다.


부처님은 바실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보라. 많은 사람들이 미련하고 어리석어 헛되이 스스로 일컫기를 '바라문 종족이 제일이요, 다른 것은 비열하다. 우리 종족은 맑고 희며 다른 종족은 검고 어둡다. 우리 종족은 창조신 브라흐만의 계통으로서 브라흐만의 입에서 나왔다. 현재에도 청정하고 뒷 세상에서도 또한 청정하다'고 일컫지만, 바실타여, 이제 나의 위없는 정진의 도 가운데에는 종성을 필요로 하지 않고 우리다, 나다 라는 교만한 마음을 믿지 않는다. 세속의 법에서는 그것을 필요로 하지마는 우리 법은 그렇지 않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자기의 종성을 믿고 교만한 마음을 품는다면 우리 법 가운데서는 끝내 위없는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만일 능히 종성의 관념을 버리고 교만한 마음을 없애면 곧 우리 법 가운데서 도를 이루어 바른 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천한 부류를 미워하지만 우리 법은 그렇지 않다"

부처님은 바실타에게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네 가지 종성의 구별이 있으니 선과 악이 섞이어 있어 지혜로운 사람의 칭찬하는 바도 되고 꾸짖는 바도 된다. 어떤 것을 네 가지 종성이라 하는가. 첫째는 크샤트리아라는 종이요, 둘째는 바라문 종이요, 셋째는 바이샤 종이요, 넷째는 수드라 종이다. 바실타여, 너는 들으라. 크샤트리아종 중에도 살생하는 자도 있고 도둑질 하는 자도 있으며 음란한 자도 있고 속이는 자도 있으며 두말하는 자도 있으며 말을 꾸미는 자도 있고 간탐하는 자도 있고, 질투하는 자도 있고 비뚤어진 소견을 가진 자도 있다. 바라문종, 바이샤종, 수드라종 또한 그러하여 온갖 10악행이 있다.

바실타여, 대개 착하지 않은 행에는 착하지 않은 과보가 있고 검고 어두운 행에는 검고 어두운 과보가 있다. 만일 이 과보가 오직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종에만 있고 바라문종에는 없다고 한다면 곧 저 바라문종은 스스로 '우리가 제일이요, 다른 종성은 비천하고 열등하다. 우리 종성은 맑고 희며 다른 것은 검고 어둡다. ....'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착하지 않은 행을 행하여 착하지 않은 과보가 있고 검고 어두운 행을 행하여 검고 어두운 과보가 있는 것이 바라문종, 크샤트리아종, 바이샤종, 수드라종에 같이 있다면 곧 바라문종은 홀로 '우리 종성은 청정하여 제일이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바라문종을 보면 서로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것이 다른 이들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거짓으로 '우리는 범천의 입에서 났다. 현재에 있어서도 청정하고 뒷세상에 있어서도 청정하다'고 일컫는다. 이제 나의 제자들은 종성이 한결같지 않고 계통이 각각 달라 내 법 가운데서 집을 나와 도를 닦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묻기를 '너는 어떤 종성이냐?'고 하거든, 마땅히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라. '나는 사문 석가종성의 아들이다'라고. 또 스스로 말하라. '우리 사문종성은 친히 입에서 나왔고 진리의 화현으로 좇아 났다. 현재에도 청정하고 미래에도 청정하다'고. 무슨 까닭인가? 위대한 브라흐만의 이름은 곧 여래의 호(號)로서 여래는 세간의 눈이요, 세간의 지혜요 세간의 법이요 세간의 브라흐만이요 세간의 법륜이요 세간의 감로(단이슬)요 세간의 법주(法主)다."

"바실타여, 만일 여래가 지극히 참된 이, 비길 데 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룬 이 등의 10가지 이름을 모두 갖춘 것을 믿고 법을 독실하게 믿어 '여래의 법은 미묘하고 청정하여 현재에도 수행해야 하고 언제나 설할 수 있으며 열반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이고, 또 그것은 지혜로운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으로 어리석은 이들은 미칠 수 없는 가르침이다'는 것을 믿고, 또 독실하게 승가를 믿어 '승가는 성질이 착하고 곧 도의 과보를 성취하며 부처님의 진정한 제자로서 진리를 성취하리라. 화합대중은 곧 계의 화합대중을 성취하고 선정의 화합대중, 지혜의 화합대중, 해탈의 화합대중, 해탈했음을 스스로 아는 화합대중을 성취한다. 수다원을 향해서는 수다원을 얻고 사다함을 향해서는 사다함을 얻으며 아나함을 향해서는 아나함을 얻고 아라한을 향해서는 아라한을 얻는 네 쌍 여덟 무리는 바로 여래의 제자 승가이다. 공경할 만하고 높일만한 세상의 복밭이 되어 마땅히 사람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고 믿고 또 계를 독실히 믿어 '거룩한 계는 구족하여 이지러지거나 새는 것이 없고 모든 흠이나 틈이 없으며 또 더러운 점이 없어 지혜로운 이의 칭찬하는 바로서 선적(善寂)을 구족할 것이다'......"

천지의 마지막 겁이 다해 무너질 때에 중생은 목숨을 마치고 다 광음천에 났는데, 자연히 화생(化生)하여 생각의 기쁨으로 먹이를 삼고 광명은 스스로 비치고 신족으로써 허공을 날아다녔다. 그 뒤에 이 땅은 다 변해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그 때에는 해나 달이나 별도 없었고, 밤이나 낮이나 연도나 월의 수도 없고 다만 큰 어둠이 있을 뿐이었다. 그 뒤에는 이 물이 변해 천지가 되었고 모든 광음천은 복을 다해 목숨을 마치고는 다시 땅에 태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생각을 먹고 살았다. 신족으로 날아다니고 몸의 광명은 스스로 비치면서 여기서 오랫동안 살았다. 각각 스스로 일컫기를 '중생 중생'이라고 했다. 그 뒤에는 이 땅에서 단 샘이 솟아나 그것은 마치 요구르트나 꿀 같았다. 저 처음으로 온 천신으로서 성질이 경솔한 자는 이 샘을 보고 잠자코 스스로 생각했다. '저것은 무엇인가 시험해 맛보리라'고. 곧 손가락을 물에 넣어 시험해 맛보았다. 이렇게 하기를 두세번 함에 점점 그 맛남을 깨닫고 드디어 손으로 움켜쥐어 마음껏 그것을 먹었다. 이렇게 애착하여 끝내 만족할 줄 몰랐다. 그 밖의 중생들도 또 그것을 본받아 먹어보았다. 두세번 되풀이하는 동안에 그 맛남을 깨달았다. 그것 먹기를 계속하지 그들의 몸은 점점 추하게 되고 살결은 굳어져 하늘의 묘한 법을 잃어버렸다. 또 신족은 없어져 땅을 밟고 다니게 되고 몸의 광명은 갈수록 멸해 천지는 깜깜해졌다.

마땅히 천지의 법칙은 큰 어둠이 있는 뒤에는 반드시 일월과 성상이 있어 허공에 나타난 뒤에야 곧 밤과 낮과 어둠과 밝음과 연도와 월의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때의 중생은 다만 땅맛(단샘)을 먹으면서 오랫동안 세간에 살았다. 그것을 많이 먹은 자는 얼굴빛이 추하고 더러우며 그것을 적게 먹은 자는 얼굴빛이 오히려 즐겁고 윤기가 있었다. 곱다 밉다 단정하다는 것은 여기서 처음으로 있었던 것이다.

그 단정한 자는 교만한 마음으로 누추한 자를 업신여기고 그 누추한 자는 질투하는 마음으로 단정한 자를 미워했다. 중생들은 여기서 각각 서로 성내고 다투게 되었다. 이 때 단샘은 저절로 말라버렸다. 그 뒤에 이 땅에는 저절로 지비(地肥)가 나서 빛깔과 맛이 갖추어져 향기롭고 조촐하여 먹을 만했다. 이 때 중생들은 다시 그것을 먹으면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것을 많이 먹은 자는 얼굴 빛이 초췌하고 그것을 적게 먹은 자는 오히려 얼굴빛이 즐겁고 윤이 났다. 그 단정한 자는 교만한 마음으로 누추한 자를 업신여기고 그 누추한 자는 질투하는 마음으로 단정한 자를 미워했다. 중생들은 여기서 각각 서로 다투고 꾸짖게 되었다.

이 때에 지비는 다시 나지 않았다. 그 뒤에 다시 추한 지비가 났다. 향기롭고 맛나 먹을 만은 했지만 먼저 것보다는 못했다. 이 때 중생들은 다시 이것을 먹으면서 오랫 동안 세간에 살았다. 그것을 많이 먹은 자는 오히려 얼굴 빛이 갈수록 누추하고 그것을 적게 먹은 자는 얼굴빛이 오히려 즐겁고 윤기가 났다. 단정과 누추의 서로 갈마드는 지비는 드디어 다투고 꾸짖는 일을 만들어 내었다. 지비는 드디어 다시 나지 않았다.

그 뒤에 이 땅에는 저절로 멥쌀이 나왔다. 그것은 등겨가 없으며 빛깔과 맛을 구족하고 향기롭고 조촐하여 먹을 만했다. 이 때 중생들은 다시 그것으로 오랫동안 세상에 살았다. 곧 남녀는 서로 보게 되고 점점 정욕이 생겨 갈수록 서로 친근하게 되었다. 그 밖의 중생들은 이것을 보고 서로 말했다. '너의 하는 짓은 그르다. 너의 하는 짓은 그르다'하고 곧 배척하고 몰아내어 대중 밖에 있게 하여 3개월이 지난 뒤에 돌아오게 하였다.

전일에는 그르다고 생각했던 것을 지금은 옳다고 생각했다. 그 때 중생들은 법이 아닌 것을 익혀 정욕을 마음껏 즐기면서 끝없이 계속하여 때도 철도 없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생겨 드디어 집을 지었다. 이때부터 세간에는 방이 있게 되어 법답지 않은 것을 즐겨 익혀 음욕은 갈수록 더해 갔다. 곧 포태(태반)가 있게 된 것은 부정(청정하지 않음)으로부터 생겼으니 세간의 포태는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때에 저 중생들은 저절로 난 멥쌀을 먹었다. 취하는데 따라 연달아 나서 다함이 없었다. 저 중생 가운데 어떤 게으른 자가 있어 가만히 스스로 생각했다. '아침에 먹을 것은 아침에 취하고 저녁에 먹을 것은 저녁에 취하는 것은 내게 있어서 수고로운 일이다. 이제 하루 먹을 것을 한꺼번에 취하자.' 그래서 곧 한꺼번에 취하였다. 뒤에 그 친구가 그를 불러 함께 가서 쌀을 취하자 하였다. 그 사람은 대답하기를 ‘나는 이미 하루 먹을 것을 한꺼번에 가졌다. 너는 취하고자 하거든 네 마음대로 취하라’고 하였다. 저 사람도 또 혼자 생각했다. ‘이 사람은 영리해서 남 먼저 쌀을 저축했다. 나도 이제 3일분의 쌀을 저축하리라.’ 그 사람은 곧 3일분의 쌀을 저축했다. 다른 중생들이 또 와서 ‘함께 쌀을 가지러 가자’고 말했다. 그는 대답했다. ‘나는 이미 먼저 3일분의 양식을 저축했다. 너는 취하려거든 혼자 가서 가지라’고 했다. 그 사람도 또 생각했다. ‘이 사람은 영리해서 먼저 3일분의 양식을 취하였다. 나는 또 저를 본받아 5일분의 양식을 저축하리라.’ 그는 곧 가서 가졌다. 때에 저 중생들은 서로 다투어 저축했다. 그러자 멥쌀은 거칠고 더러워지며 또 겨가 생겼다. 그리고 벤 뒤에는 나지 않았다.

때에 저 중생들은 이것을 보고 낭패하여 드디어 어쩔 줄도 모르고 각각 가만히 생각했다. ‘우리가 본래 처음 났을 때에는 생각을 먹이로 삼고 신족으로 허공을 날으며 몸의 광명을 스스로 비치면서 세상에 오랫동안 살았다. 그 뒤에는 이 땅에 단샘이 솟아났고 그것은 마치 요구르트, 꿀과 같아서 향기롭고 맛나 먹을 만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함께 먹었다. 그것을 먹은지 오래 되자 그것을 많이 먹은 자는 얼굴 빛이 누추하고 그것을 적게 먹은 자는 얼굴빛이 오히려 즐겁고 윤이 났었다. 이 음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얼굴 빛은 달라졌다. 이에 중생은 각각 지비를 가지고 서로 미워하게 되었다. 이 때에 단샘은 저절로 말랐다. 그 뒤에 이 땅은 지비를 내었다. 빛깔과 향기를 모두 갖추고 향기롭고 맛나 먹을만했다. 때에 우리들은 또 그것을 다투어 먹었다. 그것을 많이 먹은 자는 안색이 초췌하고 그것을 적게 먹은 자는 안색이 즐겁고 광택이 났다. 중생은 여기서 또 시비를 가지고 서로 미워했다. 이 때에 지비는 다시 나지 않았다. 그 뒤에는 다시 거칠은 지비가 났다. 또한 향기롭고 맛나 먹을 만했다. 때에 우리들은 다시 그것을 다투어 먹었다. 많이 먹으면 빛이 추하고 적게 먹으면 빛이 즐거웠다. 또 지비를 가지어 서로 미워했다. 이 때에 지비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저절로 멥쌀이 났다. 그것은 겨도 없었다. 때에 우리들은 다시 그것을 먹으면서 오랫동안 세상에 살 때 저 게으른 자들은 서로 다투어 저축했다. 그래서 멥쌀은 거칠고 더러워지고 또 겨를 내었다. 그리고 벤 뒤에는 다시 나지 않는다. 이것을 장차 어찌 하면 좋을까.’

그들은 다시 서로 말했다. ‘우리는 마땅히 땅을 갈로 따로 따로 표지를 세우자’ 곧 땅을 나누어 따로 따로 표지를 세웠다. 바실타여,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비로서 논밭과 땅의 이름이 생겼다. 그 때의 중생은 따로 논밭은 차지하고 경계를 정하자 점점 도둑질할 마음을 내어 남의 벼를 훔쳤다. 다른 중생들은 그것을 보고 말했다. ‘네가 하는 짓은 그르다. 네가 하는 짓은 그르다. 자기도 논밭은 가지고 있으면서 남의 물건을 가진다. 지금부터는 다시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중생은 오히려 도둑질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다른 중생들도 그를 꾸짖기를 그치지 않았다. 곧 손으로 그를 치면서, 여러 사람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자기 논밭을 가지고 있으면서 남의 물건을 훔친다.’ 그 사람도 여러 사람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나를 친다.’

때에 저 여러 사람들은 두 사람의 다투는 것을 보고 걱정하고 시름하며 또 번민하면서 말했다. ‘중생은 갈수록 악해져서 이 세상에는 이른 착하지 않은 것이 있고 더럽고 부정함이 생겼다. 이것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으로서 번뇌의 고통의 갚음은 3악도(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지는 것이다. 논밭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런 다툼이 생겼다. 이제 차라리 한 사람을 세워 주인으로 삼아 이것을 다스리게 해야 하겠다. 보호해야 할 자는 보호하고 꾸짖어야 할 자는 꾸짖게 하자. 우리가 각각 쓰는 쌀을 줄여 그것을 그에게 대어 주어 모든 송사를 다스리게 하자.’고 하였다. 때에 그들 중에서 몸이 크고 얼굴이 단정하며 위덕이 있는 한 사람을 뽑아 그에게 말했다.

‘너는 이제 우리들을 위해 평등한 지도자가 되어 마땅히 보호할 자는 보호하고 꾸짖을 자는 꾸짖고 쫓을 자는 쫓아라. 우리는 쌀을 모아 공급하여 주리라.’ 그 한 사람은 여러 사람의 말을 듣고 임금이 되어 다툼을 판결해 다스리고 여러 사람들은 쌀을 모아 공급했다.

그 한 사람은 또 착한 말로 여러 사람을 위로했다. 여러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다 매우 기뻐해 칭찬하면서 서로 말했다. ‘좋습니다, 임금이시여. 좋습니다, 임금이시여.’ 이에 세간에는 곧 임금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바른 법으로 백성을 다스리기 때문에 크샤트리아라고 이름했다. 그래서 세상에는 크샤트리아라는 이름이 생겼다.

때에 그 무리들 중에 어떤 사람은 혼자 이렇게 생각했다. ‘집이란 큰 걱정거리다. 집이란 독한 가시다. 나는 이제 이 사는 집을 버리고 혼자 산림 속에 들어가 고요히 도를 닦으리라.’ 곧 집을 버리고 산림에 들어가 고요히 깊은 생각에 들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그릇을 가지고 마을로 들어가 밥을 빌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다 즐거이 공양하고 기뻐하며, ‘훌륭하다. 이 사람으 능히 사는 집을 버리고 혼자 산중에 살면서 고요히 도를 닦아 모든 악을 버리어 떠난다.’고 칭찬했다. 여기서 세간에는 비로소 바라문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바라문중에는 고요히 앉아 참선하고 명상하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곧 속세로 들어가 글을 외우고 익히기를 업으로 삼아 또 스스로 일컫기를 ‘나는 참선하지 않는 사람’이라 했다. 그래서 세상 사람은 그를 ‘참선하지 않는 바라문’이라 불렀다. 인간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를 또 인간 바라문이라 이름했다. 이에 세간에는 바라문 종족이 있게 되었다.


제5에는 사문의 무리라는 이름이 있다. 그 까닭은 바실타여, 크샤트리아 무리 가운데 어느 때 어느 사람은 스스로 자기의 법을 싫어해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고 도를 닦았다.. 여기서 비로소 사문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바라문종, 바이샤종, 수드라종 중에서 어느 때 어떤 사람이 있어 스스로 자기들의 법을 싫어해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고 도를 닦았다. 그것을 사문이라 이름했다.

바실타여, 크샤트리아 종족 가운데서 몸으로 착하지 않음을 행하고 입으로 착하지 않음을 행하고 뜻으로 착하지 않음을 행하는 자는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괴로운 과보를 받는다. 바라문종, 바이샤종, 수드라종의 몸으로 불선을 행하고 입으로 불선을 행하고 뜻으로 불선을 행하는 자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괴로운 갚음을 받는다.

바실타여, 크샤트리아 종족 가운데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고 도를 닦는 자 있어 7각의(覺意)를 닦으면 오래지 않아 도를 이룰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저 종성 아들이 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위없는 범행을 닦아 현재의 법 가운데서 몸소 진리를 체험한 끝에 태어남과 죽음이 이미 다하고, 청정한 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다해 마쳐 다시 뒷세상의 목숨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바라문, 바이샤, 수드라종 가운데서도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고 도를 닦아 7각의(覺意)를 닦으면 오래지 않아 도를 이룰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저 종성의 아들이 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위없는 범행을 닦아 현재의 법 중에서 몸소 진리를 체험한 끝에 나고 죽음이 이미 다하고 청정한 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다해 마쳐 다시는 뒷 세상의 목숨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바실타여, 이 4종성 가운데서 지혜와 행할 바를 완성하여 아라한을 성취한 것을 가장 제일이라 한다.


능히 종성을 버리고 떠나

지혜와 자비를 성취한 사람

세간에서 제일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