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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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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개그

요즘 많은 사람들은 코미디란 단어보다 개그란 말이 더 친숙하게 여기는 것 같다. 나는 개그라는 말만 들어도 재미를 느낀다. 그 계산된 시퀀스에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소재에다 피눈물나는 연습이 받쳐줘야 많은 이가 공감하는 멋진 개그가 펼쳐지는 것이다. 경험들이 있으시겠지만, 가끔 세련되지 못한 몸개그를 볼 때면 (슬랩스틱 코미디도 훌륭한 쟝르이긴 하지만),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그 슬픔이 깊어지면 어쩔 수 없이 그건 노여움으로 변한다.

정치판의 개그소재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가 쉽게 찾아낼 정도로 식상하다. 감상하면서도 별 안타까움없이 간헐적으로 욕설만 섞어주면 그만인 소재들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성장동력으로 기대되는 문화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문화판을 생각하면 괜히 안타까워진다. 오랫동안 나는 현장에서 ‘슬픈 개그’를 많이 보았다. 써먹을 때면 원조논쟁에 휘말리기도 하면서.

대구읍성, 달성토성 외에도 고성동이라는 지명으로 볼 때, 예로부터 성곽도시 대구에는 성(城)이 3개가 있었다는 한 컨설팅업체의 막무가내식 설명에 전문가의 값비싼의 연구결과라 틀림없겠거니하고 넘어가 주는 사람들. 팔공산 부인사 앞에서는 예전에 전국 유일의 승시(僧市)가 열렸는데, 복원하여 대구를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만들어야 된다는 주장은 ‘고증자료가 있느냐’는 물음에 ‘없다는 증거를 대보라’는 식의 억지로 바뀌었다.

논란이 되면 좋을 것 없는 결정을 위해, ‘어차피 해야할 일인데, 통과의례인데...’하며, 언론사가 가급적 취재를 오지 않았으면 하고 보도자료를 아끼는 사람들도 슬픈 개그의 멋진 소재다. 문화행정, 문화정책을 위해 발로 뛰지 않고 엎드려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들은 ‘복지부동’이라고 했지만, 아마도 그들은 ‘신토불이’라고 정정을 해줄 것만 같다. ‘광개토왕비가 지나갔다’는 이유로 그 비의 복원을 서두르는 사람들, 오페라 공연장 무대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는 이를 뒤집어지게 하는 개그소재다.

또한 입신을 위해 문화판을 정치판으로 만드는 사람들, 기득권으로 틈입을 위해 한때 자랑스러웠던 이력을 감추는 사람들, 해프닝에 가까운 이벤트로만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들, 벤치마킹이라는 미명하에 값싸고 편한 베끼기로만 문화를 만들려는 사람들, 예로부터 완장찬 문화는 문화적 범죄로 이어진다는 개연성을 괴담취급하며 무시하는 사람들. 임기라는 온실에서 문화를 웃자라게하거나, 성장을 억제하는 고도의 기술을 보여주는, 우리가 뽑은 사람들. 모두 슬픈 개그의 소재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지은 책 중에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라는 책이 있다. 이 역설적인 타이틀의 책이름처럼, ‘하지 말라는 것’이 개그가 되는 건 아닐까. 그의 또 다른 책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에서 즐거워지는 것은 조금 비겁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개그가 가지는 역설의 힘을 보여줄 요량인지는 몰라도, 지금 이 시간에도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슬픈 개그들이 끊임없이 터지는 문화판에서 몇몇의 문화생산자, 몇몇의 문화중개자들은 오늘도 그 역할을 다하고 계신다. 개그를 주어로 삼았는데, 저지른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면 이상한 일 아닌가. 이 지경을 슬프다고 해야 하나, 웃긴다고 해야 하나.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과 비슷한 서정성을 가질 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분명 슬픈 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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