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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주인공인 토종환타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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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주인공인 토종환타지를 위하여
모두가 주인공인 토종환타지를 위하여

어느 웃음강사가 들려준 이야기.
-인생에서 언제나 두 가지만 고민하면 됩니다.
-아프냐, 아프지 않느냐.
-안 아프면 괜찮고, 아프다면 두 가지만 걱정하면 됩니다.
-죽을 병이냐, 아니냐.
-죽을 병이라면 두 가지만 걱정하면 됩니다.
-죽어서 천당이나 극락을 갈 거냐, 지옥을 갈 거냐.
-천당, 극락 간다면 걱정할 필요 없고, 지옥을 간다면?
-살면서 얼마나 죄짓고 살았으면 지옥을 가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죠?

그야말로 단죄다. 스토리텔링의 재미도 이렇게 극명하게 갈라진다.
두 가지만 걱정하자. 감동으로 이어질 진실이 담겨있나? 언제 봐도 재미가 있나?

(1)

대구의 스토리텔링은 잊거나 기억하거나, 잃어버리거나 되찾거나, 먹거나 먹히거나, 떠나거나 돌아오거나로 판가름난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몰라서 못하는 건지, 알면서도 안하는 건지 도무지 정신이 번쩍드는 이야기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모아보자!, 섞어보자!. 짬뽕밥식 스토리텔링도 획기적일 수 있다. 하지만, 부위별(?)로도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본다. 역사, 인물, 장르, 장소별로 모듬요리, 퓨전서비스여도 좋겠다. 큰 주목은 받지 못했지만, 대구시립극단이 실험했던 <춘심홍로줄>같은 작품이 대구에서는 효시다. 대구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극적인 반전이 없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멋진 시도였던 점은 분명하다.

(2)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시공을 넘어 사방에 늘려져있는 사람과 현장과 추억을 쏟아 부어본다. 조금만 상상을 해도 큰 이야기가 쏟아지리라.

고려 현종 때부터 70여년에 걸쳐 만들어진 고려대장경이 팔공산록 부인사로 옮겨지고, 기센 부인사의 승려들은 운문사와 연합으로 무신정권에 항거하다가 홍수에도 쓸리고, 바람에도 불려가 절은 폐사가 된다. 대장각의 대장경판은 1232년 몽고병의 방화로 불타오르고, 비슬산 기슭에서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일연선사는 훗날 남해섬에서 팔만대장경의 원력을 이루고, 공산 운해사에서 낙성식을 거행한다. 그리고는 1000년을 맞는다.

조선 영조 때, 세 남자가 대구의 토성을 견고한 읍성으로 다시 짓는다. 전주성과 동래성 건축의 노하우에다,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까지 합쳐져 대구는 우리나라 최고의 성곽도시로 거듭난다. 그들의 노하우는 60년뒤 고스란히 수원화성축성의 주역 정약용에게로 이어진다. 세월이 흘러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알력으로 관찰사들의 부침이 있었고, 일제에 의해 읍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100년이 흘렀다. 그 석재들은 이리저리 나눠져 근대건축물의 초석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유곽을 만들기 위한 습지를 메우는 데 쓰여진다. 전주성의 건축기록이 강원도의 고서방에서 발견되었듯이, 경상감영의 인쇄공방의 목판은 그 사이 두 번이나 불에 타 사라졌지만, 대구읍성의 건축기록은 어디에선가 남아있으리라 믿는 한 젊은 사학도가 전국을 누비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서상돈, 교남학교 창문 넘어 빼앗긴 들판을 쳐다보는 상화시인. 그리고, 6.25 당시의 대구. 신암동 피난민촌(그 때의 자잘한 풍경까지 고바우 김성환 화백이 꼼꼼하게도 그려놓았다). 향촌동, 말대가리집, 요강젓집, 감나무집, 종군문인들, 그들의 통음. 낙동강의 혈류를 본 이 들의 정신분열. 만경관에서 막이 오른 구국문인극. 마당 깊은 집. 주인공 길남이의 새벽길. 전쟁통에 아내를 잃고 절름거리는 이인권의 미사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전선야곡, 굳세어라 금순아도 송죽극장 앞에 울려 퍼진다. 서울수복 후, 대구역광장.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이별이 이어진다.

그리고는, 2.28학생의거 눈빛 맑은 교복차림의 학생들. 인혁당 사건으로 비통하게 아침이슬처럼 사라진 사람들...모두가 대구의 주인공이다.

(3)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한이름 하는 사람들로 그득하다.

저 멀리 80년 넘은 생애에서 40년 이상을 대구땅에서 살았던 일연선사가 민지, 청분 등 그의 제자들과 서있고, 성곽돌을 다듬는 석공들의 무리 속에 햇볕에 검게 탄 얼굴로 관찰사 민응수가 웃고 있다. 시인 김춘수는 꽃밭에, 시인 유치환은 우체국 앞에, 화가 이중섭은 성가병원의 침대위에, 맥타가트 교수는 문병 차 그의 침상 옆에, 시인 신동집은 빈콜라병을 들고 서있다. 시인 구상은 영남일보 앞에, 화가 이묘춘은 여전히 파리떼를 그리고 있고, 이필동은 누리소극장에서, 가수 김광석은 명덕로타리에서 만난다.

베토벤스타일의 흰머리 청춘 신성일은 엄앵란과 같이 맨발의 청춘으로 서 있고, 과거는 흘러갔다 노래한 여운은 빨간 구두 아가씨를 뒤따르다 놓치고 돌아오는 선배 남일해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너머에서 이지연은 바람아 멈추어 달라고 노래하고 있다. 영화감독 이창동, 박철수, 배용균은 고향지도를 펴고, 다음 작품 로케이션을 찾는 중이다. 이두호는 여전히 만화를 그리느라, 이한철은 신곡준비 하느라 정신이 없고, 김제동은 그들에게 특유의 웃음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나는 환상을 본 것일까. 아니면, 먼저 세상을 뜬 그들이 내게 빙의된 것일까. 어쨌든 신화속 그들의 캐스팅은 힘들지 않을 것 같다.

(4)

진정한 스토리텔링은 솥발처럼 받쳐져야 든든해진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문화생산자, 문화소비자, 문화중개자의 3가지 애정이 필요하다.

문화생산자는 방하착(放下着)하라. 좋은 악기를 만들어 연주자에게 넘겨주듯, 붓의 명인들이 붓을 만들어 주듯, 자신의 작품의 생명력은 문화소비자가 결정한다는 준엄한 진리를 거역해서는 안된다.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든 우물을 뛰어넘어야한다는 것도 잊지 말기 바란다. 문화소비자는 호사취미를 버리고, 편애하지 말며, 문화창조의 일원이라고 크게 생각하라. 문화중개자는 양팔이 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닿아있다는 생각을 버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강요하지 말고, 부드럽게 개입하라. 지도를 만드는 마음으로 전체를 보라. 양심을 갖고, 전문성을 키우고, 다른 도시, 다른 나라의 멋진 사례들을 철저히 모으라.

이러한 마음들의 어울림이 분명 ‘또 하나의 문화’로 거듭날 것이다. 그래도,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는 몰염치와 해바라기성 문화복제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고민이 깊어진다. 여태까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설마가 사람 잡고, 혹시가 역시로 되었었는데...

(5)

스토리텔링이 문화콘텐츠의 근간이다. 흥행에 성공한 연극이나, 영화는 희곡과 시나리오가 탄탄하기 때문인 것과 같은 이유다. 바라기만 한다고 잘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넘어야 할 장벽이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앞뒤가 꽉막힌 ‘인의 장막’을 헤쳐가야 한다.

누군가 내게 해준 이야기인데, 모두들 씁쓸해 하면서도 공감하는 이야기라 여기 전한다.

-이런 아이디어 어때요? 아, 예산이 없습니다.
-예산은 확보하셨다는데, 어때요? 아, 전례가 없습니다.
-지난번에 비슷한 것 했었는데, 올해는 이런 것 어때요? 아, 조례가 없습니다.

아, 우리는 오늘도 예산 없고, 전례 없고, 조례 없는 3무의 도시에서, 이야기 많고, 인재 많고, 걱정 많은 3다의 도시에서 기발한 문화콘텐츠를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아직은 요원하다. 참, 지난 5월초 열린 한방축제 리플렛을 우연히 보았는데, 앞면에 남산타워와 여의도 쌍둥이 빌딩이 보이는 한강의 야경이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사진이 바뀐 건 아닐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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