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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자를 위한 붓다의 교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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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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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언제나 상대편의 근기에 따라 법을 설했다. 즉 청취자의 능력과 수준에 따라 각기 다르게 법을 설했다. 이러한 붓다의 설법태도를 대기설법(對機說法) 혹은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 한다. 이 대기설법에 따르면 붓다의 교설은 크게 출가자를 위한 교설과 재가자를 위한 교설로 구분된다.

그런데 대승불교권에서는 출가와 재가의 구별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법을 설한다. 대승불교 자체가 출가와 재가의 엄격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승불교는 원래 재가자를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불교운동이었기 때문에 출가와 재가를 구분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는 출가보살과 재가보살의 역할이 분명해지면서 구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편 초기불교에서는 처음부터 출가자를 위한 교설과 재가자를 위한 교설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출가자가 지켜야 할 계율과 재가자가 지켜야 할 계율이 완전히 다르게 제시되었고, 그 실천 수행법도 완전히 구분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고, 간혹 스님들의 법문 중에는 재가자들이 현실적으로 전혀 수용할 수 없는 것들을 강요하는 경우를 흔히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법문은 신심을 불어넣어 주기보다는 오히려 불교를 외면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실 출가자와 재가자는 그 삶의 방식이 전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법문의 내용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간과한 법문은 공허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출가자는 삼의일발(三衣一鉢)에 의한 무소유(無所有)의 삶이 미덕이다. 반면 재가자는 보다 많은 재화(財貨)를 획득해야만 생활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가자에게 무소유의 삶을 강요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없다. 간혹 재가자 중에서는 이러한 법문을 듣고 재물을 획득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위배되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것은 출가자에게 해당되는 교설을 재가자에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초기경전에 의하면 붓다께서는 출가자가 아닌 재가자에게는 정당한 방법에 의해 열심히 노력하여 보다 많은 재화를 획득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면 재물은 자신의 삶은 물론 타인에게도 안락을 줄 수 있고, 또 나머지 여력으로 성자와 출가자에게 공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초기경전에는 재가자를 위한 교설이 많이 담겨져 있지 않다. 붓다께서 재가자를 위한 가르침을 펴지 않았기 때문에 경전에 수록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붓다는 오히려 출가자보다 재가자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법을 설했을 것이다. 그러면 초기경전에 재가자를 위한 교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이것은 경전 성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역사적으로 붓다의 가르침은 처음부터 문자로 기록된 것이 아니었다. 붓다의 말씀은 제1회 결집 이후 스님들의 암송에 의해 구전(口傳)되어 오다가 기원전 1세기에 비로소 문자로 기록되었다. 이와 같이 붓다의 말씀이 구전되는 동안 출자자들은 자신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재가자를 위한 교설을 굳이 암송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재가자를 위한 교설이 무시되어 전승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 증거로 현재 초기경전에 남아있는 재가자를 위한 교설들은 대부분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거나, 출가자에게 먼저 법을 설하고, 이어서 재가자에게 설법한 것들이 남아 있다. 간혹 재가자만을 위한 아주 특별한 경우도 남아 않지만 초기경전에서 재가자를 위한 교설은 현재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스님들의 구전에 의해 전승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에 의해 비록 초기경전에 재가자를 위한 교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우리는 현존하는 초기경전을 통해 붓다께서 재가자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오로지 재가자들의 신앙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이 연재물은 초기경전 가운데 붓다께서 특별히 재가자를 위해 설한 팔리 경전과 한역 아함에서 그 내용을 발췌하여 소개하고, 필자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일 것이다. 특히 필자는 그 경전이 설해진 배경과 문헌적 가치에 대해서도 가능한 언급할 생각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붓다께서 그 법문을 설한 본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