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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자를 위한 붓다의 교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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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자가 얻기 원하는 네 가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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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아나타삔디까(Anāthapindika) 거사가 세존께 찾아와 예배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장(家長)이여, 세상에서 얻는 것이 바람직하고 소중하며 즐겁고도 어려운, 실현해야 할 네 가지 조건이 있다. 이 네 가지는 무엇이겠는가? 

적법한 수단으로 재산이 나에게 오기를! 이것이 (실현해야 할) 첫 번째 조건이다.

적법한 수단으로 얻은 재산이 있고, 좋은 평판이 친척 및 스승들과 더불어 나에게 오기를!  이것이 … 두 번째 조건이다. 

적법한 수단으로 얻은 재산이 있고, 친척 및 스승들과 더불어 좋은 평판을 얻으면, 장수하고 먼 과거에 이르기를! 이것이 … 세 번째 조건이다. 

재산을 얻고 … 좋은 평판이 … 그리고 장수한 후, 육신이 스러지면, 저 세상에서 행복한 목적지, 하늘세계에 이르기를! 이것이 … 네 번째 조건이다.

가장이여, 이러한 것들이 세상에서 얻는 것이 바람직하고 소중하며 즐겁고도 어려운, 실현해야 할 네 가지 조건이다.

위 내용은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āya Ⅱ, p. 66)에 실려 있다. 이 경전의 이름은 빳따깜마 숫따(Pattakamma sutta)인데, 이에 대응하는 한역은 발견되지 않는다. 영어로는 ‘네 가지 행위의 공덕(Four deeds of merit)’이라고 번역되었다. 재가자가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조건들을 언급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 이 경전의 팔리어 원문에는 경전을 설한 장소가 명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전후 사정으로 미루어 붓다께서 사왓티 근처의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인 제따(Jeta) 숲에 머물고 계실 때인 듯하다. 이 경전은 아나타삔디까(給孤獨長者)에게 설한 법문이다. 붓다는 그를 가하빠띠(gahapati)라고 불렀다. 팔리어 가하빠띠는 영어로 하우스파더(housefather)라고 번역되는데, 우리말로는 가장(家長) 혹은 거사(居士)라는 뜻이다.    이 경전에 의하면, 한 개인의 네 가지 주요한 바람 가운데 하나는 “적법한 수단으로 재산이 나에게 오기를!” 원하는 것이다. 모두 부유하고 풍요로운 사람이 되길 원한다. 붓다는 이 타고난 인간의 본성을 잘 알고 있었다. 붓다에 의하면, 이것이 얻는 것이 바람직하고 소중하며 즐겁고도 어려운 것이다. 한 개인이 부유하고 풍요해지고 나면, 그는 자신의 친척들과 스승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장수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세 가지 조건만으로는 재생을 믿는 한 개인의 삶을 행복하고 성공적이며 완전하게 만들지 못한다. 재산, 좋은 평판과 장수의 성취와 함께 그는 육신이 스러지면, 저 세상에서 행복한 목적지, 하늘세계[天界]에 이르기를 바란다.

이 설명에 따르면, 경제적 여건은 완전하고 만족스런 삶의 가장 근본적이고 중차대한 요소이다. 경제적 여건이 튼튼하고 안정되지 못하면, 그 개인은 어떤 희망도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된다. 자신의 모든 희망과 전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그의 재산이다. 평판, 장수 및 사후의 행복한 목적지는 재산의 결과로써 생기는 조건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얻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얻기 바라는 네 가지 조건은 재산, 좋은 평판, 장수, 생천(生天)이다. 이 네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산이다. 특히 재가자는 재산이 있어야 그 다음 단계, 즉 평판, 장수, 생천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붓다는 인간사회에서 재산이 차지하는 두드러진 역할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붓다는 재가자들에게 재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아나타삔디까는 붓다 당시 최고의 재력가였다. 그는 최초의 불교 사찰인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 승단에 기증했던 사람이다. 오늘날의 재벌 총수와 같은 사람이다. 이러한 재벌 총수에게 붓다는 재산의 효용성을 강조하는 법문을 설했다. 이 점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흔히 불교도는 무소유의 청빈(淸貧)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덕목은 출가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따라서 출가자에게 요구되는 무소유의 삶을 재가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붓다는 가난을 찬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