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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을 넘어(이치와 방법)

조회 1316

순일선원 2013-01-10 13:01:48

괴로움을 넘어(이치와 방법) 


··········(전략)

정통종교들은 전부다 일단 ‘여기가 죄다’나 ‘괴로움이다’로 시작한다. 이런 겁니다.
‘행복이다.’ 이렇게 시작 안한다. 이것입니다.
그 이유는 ‘행복이다’ ‘행복자체다’ 란 건 오온을 인정하는 거고, 탐욕을 인정하는 것이기 땜에 우리가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바깥대상에 대해서 접촉에 의해서 즐거워하는 것을 전부다 행복이라고 느끼고 있는 거거든요.
탐욕들을 전부다 행복이라고 느끼고 있는 거다. 이런 얘기이다.
그거를 ‘여긴 행복이다.’라고 인정하는 건 ‘오온자체가 행복이요. 오온자체가 실체요. 오온자체가 탐욕이 전부다. 행복이 실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점점 더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로움을 갖게 된다. 이런 겁니다.
그래서 ‘오온자체가 괴로움이요, 이 세계 자체가 무상하고, 괴로움이다.’ 라는 것은 부정적인 말씀이 아니라 복음이다 이런 얘깁니다.

이렇게 해서 방법론이 생겼거든요.
아까 기뻐하는 것을 기뻐하는 즐거움인 행복이 오더라도 ‘아이고 행복해 죽겠다. 이건 실체다’ 이러지 않고 ‘이행복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실체가 아니니 곧 괴로움으로 변할 것이다. 이건 즐길만한 것이 못 된다.’하고 행복이 오더래도 물론 누리긴 하되 스쳐 보낸다.
그와 똑같은 거로 행복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괴로움이 와도 스쳐 보낼 수 있습니다.
이건 무상하고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조건 때문에 괴로워는 하지만 곧 이 괴로움은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육체적 고통’이 올망정 ‘정신적 고통’은 받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분노도 괴로움도 그렇게 해서 스쳐 보낸다.
이와 같이 하게 되면 그는 평정에 이르게 됩니다.
육체적 행복, 정신적 행복 이렇게 하면서 오온의 개체성을 출리하게 된다.
점점 벗어나게 되고 여기서 드디어 ‘이것이 괴로움이다’가 아니라 이 괴로움을 초월해서 말할 수 없는 ‘지복’이 이르게 된다. 이런 얘기를 드렸고요.
그리고요 이렇게 알았을 때 우리가 인욕 할 수 있다.
이것은 사실을 직시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자체예요’ 이렇게 하면 좌절할 것이다 이런 겁니다.
여기서 사랑자체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물론 그런 것도 있지요. 다가 사랑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이렇게 얘기하죠. 달콤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공부될 방법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경전에 물론 사람은 다 사랑받고 싶어 한다. 하셨죠.
자기가 사랑받고 싶어 한다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은 다른 얘깁니다.
경전에선 ‘누구나 다 자기를 제일 사랑하니까 그와 같이 남을 사랑해라’ 이러신 거죠.
지금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하며는 우리는 이런 생각 듭니다.
‘오온이 괴로움’이다가 아니라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실체다’
··········(중략)···········
이와 같이 지금 부처님 말씀을 듣기에는 달콤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진실로 그 말씀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말씀이에요.
달콤한 말은 오히려 불행으로 갑니다.
달콤한 말이 아까도 얘기해  드렸다시피 내가 하는 바깥세상의 대한 즐거움을 탐욕을 전부다 행복이라고 얘기 하는 거기 때문에 그건 점점 ‘탐에 머물러’ ‘탐에 강요되어 탐에 완전히 동요되어’ ‘인색함’ 까지 간다. 이러셨던 거죠.

(후략)··········


2012. 5. 20 정기법문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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