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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진원 변호사 “기도하며 수험생활...‘대종강화(大宗强化) 인류공영’ 유지 받들 것” 상세보기

이진원 변호사 “기도하며 수험생활...‘대종강화(大宗强化) 인류공영’ 유지 받들 것”

박명한 2022-10-07 14:46:56

이진원 변호사

■ 출연 : 이진원 변호사 

■ 방송 : BBS 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대구 FM 94.5Mhz·안동 FM 97.7Mhz·포항 105.5Mhz)

■ 진행 : 대구BBS 박명한 방송부장

 

▷ 박명한 : 우리 주위에서는 수많은 장애를 극복하고 꿈을 이룬 사람을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계발을 통해 

불가능할 것 같은 고지에 올랐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요. 

파워인터뷰, 오늘은 불교적 신심을 바탕으로 장애를 딛고 50대 중반에 변호사의 꿈을 이룬 이진원 변호사를 만나보겠습니다. 

이진원 변호사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 이진원 변호사 : 네 안녕하십니까?

 

▷ 박명한 :  먼저 간략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 이진원 변호사 : 저는 55세고요. 

경북대 법대를 1992년에 졸업하고 2014년도에 전북대 로스쿨에 입학해서 작년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현재는 대구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변호사입니다.

 

▷ 박명한 : 네 작년에 합격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55세시니까 이제 50대 중반에 이제 합격을 하셨는데 

참 늦은 나이지만 굉장히 큰 기쁨이셨을 것 같습니다. 합격 소식 접하셨을 때 심경이 어떠셨습니까

 

▶ 이진원 변호사 : 합격 발표 듣고 엄청 울었어요. 

처음에는 감동의 눈물이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는 이제 뿌듯함 안도감 그다음에 이제 저보다 더 저를 믿어주신 

그 스님이셨던 작은 삼촌에 대한 죄송스러움 이런 마음들이 밀려왔죠

 

▷ 박명한 : 네 방금 작은 아버지가 스님이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작은 아버지 때문에 늦게까지 수험생활 하셨습니까?

 

▶ 이진원 변호사 : 사실은 제가 여섯 살 때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었어요. 

그 이후부터 부모님이 이제 항상 저 보고는 너는 몸이 불편하니까 이제 꼭 책상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라 

그러니까 판검사 돼라 이렇게 거의 세뇌를 했어요. 

 

부모님들이 그런데 우리 스님은 이제 가끔 우리 집에 들리시면 이제 내색은 안 하셔도 

이제 부모님하고 똑같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셨고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법대로 가서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근데 이제 아버님은 제 중3 때 일찍 돌아가셨죠.

 

▷ 박명한 : 그러면 이제 대학 졸업하시고 사법시험을 몇 년 동안이나 하셨습니까?

 

▶ 이진원 변호사 : 사법시험은 솔직히 제가 진지하게 많이 안 했어요. 

 

92년에 졸업하고 한 4년 동안 했는데 사법시험을 치는 동기가 불순하니까 최선을 다 안 했던 것 같고 낙방은 당연했는데 

 

거기다가 이제 아버님이 이제 안 계시고 형편이 좋지 않으니까 96년경

사법시험을 접은 건 아니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알바를 하면서 이제 계속 해야 되겠다. 

 

그래서 이제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일이 너무 재밌어서 일에 빠져서 열심히 일을 하니까 또 인정을 받고 그

러다가 아내를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 박명한 : 네 사법시험 공부는 한 4년 정도 하시다가 바로 변호사 사무실에 사무장을 하셨는데 능력 있는 사무장이셨군요.

 

▶ 이진원 변호사 : 그렇죠 열심히 일했죠.

 

▷ 박명한 : 그런데 이제 변호사 시험에 지금 도전하기 위해서는 로스쿨에 들어가야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사무장을 하시다가 로스쿨에 입학을 해야 되겠다. 이렇게 결심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 이진원 변호사 : 그것도 그 계기도 좀 불순한데 사법시험은 그렇게 잊고 살았죠. 

 

이제 아내를 만나서 결혼하고 아들도 둘 놓고 제 2005년도에 큰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때 아내가 공인중개사를 했어요. 

 

굉장히 돈을 잘 벌었어요. 그러니까 저도 이제 그냥 변호사 사무실도 그만두고 빈둥빈둥 이제 놀면서 그 안에 공인중개사 하는 뒤치닥거리나 하고 그러다가 이제 아내가 그럴 것 같으면 로스쿨이나 한번 공부를 해봐라 

 

그래서 저도 아내가 돈을 잘 버니까 내가 돈을 안 벌어도 되겠다, 단순한 생각에 또 2021년부터 한 3년 동안 해가지고 

로스쿨에 합격을 했어요. 2014년도에 로스쿨은 입학을 했죠.

 

▷ 박명한 : 가정이 여유가 생기시다 보니까 다시 공부를 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드신 것 같은데요. 

로스쿨 졸업 이후에 변호사 시험 응시 기회가 다섯 번 있는데 마지막 다섯 번째 시험에 합격을 하셨죠. 

변호사 시험 준비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떠셨습니까?

 

▶ 이진원 변호사 : 여기서 제가 변호사 시험에 대해서 잠깐 짚고 넘어가고 싶어요. 로스쿨 3년 졸업하면 

변호사 시험을 치는데 다섯 번까지만 칠 수 있고 더 이상 또 못 쳐요. 

 

또 로스쿨을 다시 들어갈 수도 없어요. 

 

이 자리를 들어서 이분들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는 듭니다. 

 

다행히 저는 겨우 마지막에 붙었는데 부처님과 스님 덕분이죠. 

 

지금 50이 넘어서 공부하니까 체력 기억력이 다 안 되고 사실 합격은 거의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박명한 :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하셨을 것 같습니다. 방금 작은 삼촌인 스님 이야기를 하셨는데 

변호사님은 불교와 인연이 어떻게 맺어지셨습니까?

 

▶ 이진원 변호사 : 네 우리 삼촌이 스님이신데 우리 스님은 14살에 출가를 하시고 

이제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면 해인승가대학교를 나오시고 그다음에 일타 스님 상좌셨어요. 

 

그리고 1970년대는 조계종 총무원의 재정국장까지 역임하셨고 하셨고, 

근데 제가 대학교 재수를 하던 1986년 경 대구로 내려오셔서 산격동에 금강사를 불사로 창건하셨죠. 

 

이제 그때부터는 사실상 스님이 경제적 지원을 다 이제 스님이 부담을 하셨는데 저는 사실 불심이 약했어요. 

 

그래도 스님 어머님 형님으로부터 옆에서 이제 주어들은 게 있어서 불심이 약하기는 하지만 이제 있긴 있었죠. 

 

근데 그러다가 변호사 시험 공부를 2018년도 금강사에서 하게 되면서 이제 부처님께 귀의를 하게 됐습니다.

 

▷ 박명한 : 그러면 평소 신행생활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 이진원 변호사 : 그전에는 거의 안 했다가 이게 2018년 8월경 서울에서 제가 거의 거지 꼴이 돼서 금강사로 내려왔어요. 

 

삼촌 계시는데 스님이 따뜻하게 저를 맞이해 주셨고 근데 이제 우리 스님은 저를 단 한 번도 비난을 안 하셨어요. 

 

그러니까 너는 안 되겠다. 머리가 안 좋다 너 공부 안 했구나 이제 그만 포기해라 딴 길 찾아라 이런 말씀을 단 한 번이라도 했으면 

저는 이제 안 했을 거예요. 

 

근데 스님은 네가 아직 운이 안 됐구나, 업장 소멸이 안 됐다 이렇게 하셔가지고 제 제가 금강사에 공부하는 동안 

100일 기도 드리고 아침 저녁으로 불공 드리고 아침에는 화엄성중 저녁에는 산왕대신을 또 일념으로 저보고 외우라고. 

저는 이제 사실 이때도 별 불심이 없으면서도 하라고 하시니까 했어요. 

 

그런데 이제 지금은 일할 때도 유튜브로 화엄성중 산왕대신 항마진언 이런 거 틀어놓고 들으면서 일합니다. 

 

▷ 박명한 : 변호사 시험 앞두고 기도를 진짜 열심히 하셨네요.

 

▶ 이진원 변호사 :사실 이게 부끄럽습니다. 열심히 했다기보다 제가 사연을 조금 더 말씀을 드리면 

로스쿨 졸업하고 2017년 1월에 변호사 시험을 쳐요.

 

그러면 4월에는 합격을 할 줄 알았죠. 근데 이제 2017년 4월에 낙방을 했죠. 이게 처음. 낙방이거든요. 

 

한 번 정도는 낙방을 할 수 있겠지 그리고 1년 치 돈은 또 남아 있었고 그래서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 신림동에 가서 변호사 시험 학원에 다녔어요. 

 

그래서 이제 2018년 1월에 시험을 쳤는데 4월에 또 안 된 거예요. 

 

이때는 정말 암담했어요. 돈도 한 푼도 없고 아내는 또 우울증에 걸려서 경제 활동도 못 하고 

진짜 아침에 눈을 안 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창피해서 대구는 내려갈 수도 없고.

 

그래서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했는데 이 초등학교 친구가 중국 무역회사의 법무팀장 자리라고 이제 취직을 시켜줬는데 

3개월 동안 일하고 월급을 못 받았어요. 거의 취업 사기죠. 

 

그러니까 그 중요한 시기에 돈도 못 벌고 공부도 못하고 보니까 8월 말이에요. 

 

변호사 시험은 이제 네 달 남았는데 그래서 금강사로 왔죠. 

 

스님은 그때 저를 받아주시고 공부도 하지만 기도도 해라 화엄성중 산왕대신을 염송해라. 저는 이제 하는 척은 했죠. 

 

2019년 1월에 이제 시험을 친 거예요. 

그런데 4월에 또 낙방을 해서 이게 이제 세 번째 떨어진 거예요. 

 

스님 볼 면목이 없는 거예요. 그게 이 정도 되면 이제 붙어줘야 이게 뭔가 보람도 있고 이런데 

그런데 스님이 그때 또 싫은 소리 한마디도 안 하고 4전 5기다 이렇게 말씀 하시는거에요.

 

저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데 그래서 결국 2019년 6월에는 금강사를 떠나게 됩니다. 

 

제가 너무 미안해서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이제 낮에 변호사 사무실 일하고 밤에 공부하고 그래서 2020년 1월에 시험을 쳤어요. 

 

그런데 이때는 시험을 정말 잘 쳤어요. 제가 제일 잘 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엄청 기대를 하고 있어요. 이제 합격했다. 

 

스님한테 이제 보답도 해드리고 근데 그 발표를 앞두고 2020년 음력 2월 15일 부처님 열반일 날 스님이 돌아가셨어요. 

 

저한테는 이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는데 그래도 뭐 4월에 합격하면 합격증을 스님 영전에 바친다고 이렇게 생각했는데 

또 안 된 거예요. 이게 네 번째입니다. 

 

이때는 저는 사실상 모든 걸 다 내려놨어요.

제가 더 이상 제가 저를 안 믿었거든요. 

이제 주위 사람들은 다 포기했고 그런데 이제 끝까지 저를 믿어주신 스님도 돌아가셨으니까 

이 세상에 저를 믿는 사람은 이제 단 한 명도 없는 거예요. 

 

마지막 다섯 번째 시험은 그냥 쳤어요. 

남들은 불굴의 의지라고 하는데 저는 그건 아니고 그냥 한 번 남았으니까 치는 거였어요.

 

그렇게 이제 시험장에 가는데 첫날 첫날 시험을 치는데 행운이 왔어요. 엄청나게 어려운 소장 작성하는 문제를 제가 아주 잘 쓴 거예요. 

그래 이제 생각했죠. 드디어 부처님이 도와주시는구나 스님이 끝까지 도와주는구나

 

그런데 시험 끝나고 나서 이게 반전이 와요. 

 

뭐냐 그러면 제가 그렇게 잘 쳤는 시험 문제가 이 문제가 유출됐다고 해가지고 법무부가 전원 만점 처리를 한 거예요. 

 

저는 이제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았죠. 

 

원통하고 분하고, 솔직히 이때 심정은 애들이 대학만 들어가면 애들이 그때 가서 죽든지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산에 들어가든지 그러려고 했었어. 

 

발표 나는 날 선배랑 술 마셨어요. 발표도 안 보고 

근데 이제 전화가 왔어요. 이제 뒤에서 내 이름이 있다고 정말 많이 울었죠.

 

▷ 박명한 :  말씀을 들어보니까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는지 또 마지막 합격하셨을 때 얼마나 기쁘셨을지 짐작이 갑니다. 

이제 큰 고비를 넘어서 인생의 큰 꿈을 이뤘습니다만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꿈이나 계획이 있다면 어떤 게 있겠습니까?

 

▶ 이진원 변호사 : 그건 우리 스님이 정해주고 가셨어요. 

 

제가 로스쿨 합격하니까 스님이 글을 내려주셨는데 이제 그 대종광화 인류공영 액자를 해놓고 있어요. 

 

제가 사무실에 대종은 이제 문중을 뜻하거든요. 

 

그러니까 스님이 너는 시험이 되면 변호사가 돼서 문중을 빛내고 인류를 위해 일해라 

 

 

그러니까 문중만 빛내지 말고 인류를 위해 일해라. 

대종광화 인류공영. 저는 이제 이 글을 한시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반드시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 박명한 : 이제 주어진 시간이 다 돼 가고 있는데요. 끝으로 청취자 여러분께 하실 말씀이 있으면 듣고 인터뷰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진원 변호사 : 저의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저런 인생도 있구나라고 생각해 주시고요 

 

그렇지만 불자들이라면 저의 케이스를 보시고 불심을 키우시는 데 도움이 조금이라도 됐으면 좋겠습니다. 성불하세요.

 

▷ 박명한 : 부끄럽다고 말씀하셨지만 변호사님의 오늘 얘기가 많은 분들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진원 변호사 : 네 감사합니다.

 

▷ 박명한 : 파워 인터뷰, 오늘은 50대 중반에 변호사의 꿈을 이룬 이진원 변호사를 만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