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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불국사 석축 돌벽의 숨은 비결 ‘동틀돌’ 상세보기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불국사 석축 돌벽의 숨은 비결 ‘동틀돌’

정민지 2024-05-17 10:32:31

▪︎ 출연: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아침칼럼’ (2024년 5월 17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문화재청 문화재수리기술위원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의 최영식 교수입니다. 

오늘은 경주 불국사의 석축 돌벽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011년 보물 제1745호로 지정된 경주 불국사 석축 돌벽은 천300년 전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것입니다. 

토함산 서측 기슭에 위치한 불국사는 북동측이 높고 남서측이 낮아 평탄한 대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형 조건에 맞추어 석축 돌벽을 쌓고 그 위에 가람을 조성하였습니다.

불국사는 김대성이 751년에 창건한 후 1592년 임진왜란 전까지 여러 차례 중창과 중수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2천여 칸의 건물들이 모두 전소되고 석조물만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창건 당시의 석조물로는 석축 돌벽과 연화·칠보교, 청운·백운교, 다보탑, 석가탑, 석등, 사리석탑, 당간지주, 석조 그리고 각 건물의 기단과 초석 등 입니다.

이 중 석축 돌벽은 심하게 퇴락된 것을 1918년부터 1925년까지 7년간 보수하였고, 그 뒤 1969년부터 1973년까지 4년간 불국사 복원공사 때 다시 보수하였습니다.

특히 안양문과 자하문 남쪽과 그 좌우 석축 돌벽은 창건 당시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으며, 각각의 문 앞에 연화·칠보교와 청운·백운교 돌다리가 설치되어 석축 돌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안양문 앞의 석축 돌벽은 밑에서부터 수직으로 상하 두단의 돌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주두석과 동자주, 인방석 등으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격자형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자연석을 빼곡하게 채워 넣은 형태인 반면, 자하문과 범영루 앞의 석축 돌벽은 백운교 계단 위에서 단을 달리하여 상 하단의 축석 방식에 변화를 주어 하단은 큰 자연석을 여러 단 쌓고 그 위에 가공 석재를 가구식으로 짜 올렸으며, 석축 돌벽 위에는 돌난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석축 돌벽의 골격은 네모반듯한 돌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우고 돌기둥 중간에 중방을 들이듯이 간격을 두고 두 단을 설치한 뒤에 돌기둥 머리에 멍에를 얹어 마감하고 돌난간을 세웠습니다.

이 석대의 구조법을 아미타여래의 이상세계인 극락전 일곽에서는 다르게 구사하여 전체의 감각이 다양해 보이는 변화를 간직하게 하였는데, 이런 구조법의 발상과 다양성의 추구는 대단한 경지의 창의력 발휘에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불국사 석축 돌벽의 숨은 비결은 ‘동틀돌’입니다. 돌기둥에 중방을 들이듯이 결구한 부분을 자세히 보면 돌기둥 머리에 네모난 작은 돌이 그 머리만 살짝 드러내 보이고 있는데, 이 돌이 바로 ‘동틀돌’입니다. 동틀돌 뿌리는 돌벽 안으로 깊숙이 박혀 있어서 앞으로 빠져나올 염려가 절대 없습니다.

동틀돌은 머리 안쪽으로 잘쑥하게 홈을 파고, 그 홈에 상하 돌기둥이 걸리고 또 좌우의 중방처럼 생긴 장식재도 걸리게 하여 앞으로 밀려날 염려가 없어지게 하였습니다.

불국사를 조성한 기술 인력은 토함산 석굴암 조성에도 참여한 대목들입니다. 그래서 석굴암의 본존불을 모신 석실금당은 천장이 돔형태로 된 궁륭천장인데, 이 궁륭천장을 구조하는 방식에도 천장을 축조한 석재가 천장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동틀돌’ 방식을 적용한 것입니다.

불국사 석축 돌벽을 두고 그 창작성의 발휘와 든든하기 이를데 없이 시공한 노력에 실로 찬탄을 금할수 없습니다.

무심히 보고 지나치면 전혀 눈에 뜨이지 않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한 가지씩 짚어가며 감상하면 그 발상이나, 그 의도나, 그 표현 기법들은 볼수록 신비하고 과학적이어서 조상들의 숨은 능력이 고맙고 놀라움이 넘칠 지경입니다.    

오늘은 불국사의 석축 돌벽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